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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Courir)
장 에슈노즈(Jean Echenoz)
이재룡
열린책들
2010년 03월 30일
B6 양장 / 168 면
978-89-329-1022-2 03860
프랑스 문학/소설
8,800
 
 
 

메디치상과 공쿠르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 온 작가 장 에슈노즈의 『달리기』

1980년대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새로운 누보로망 작가>로 불렸던 에슈노즈는 실은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색을 지닌 작가다. 31세에 쓴 첫 소설 『그리니치 자오선』(1979년 페네옹상)이 프랑스의 권위 있는 출판사인 미뉘에서 출간된 이래 1983년 『체로키』(메디치상), 1987년 『말레이시아 항해』, 1988년 『점령』, 1989년 『호수』(유럽문학대상), 1992년 『우리 셋』, 1995년 『금발의 여인들』(11월상), 1997년 『일 년』, 1999년 『나는 떠난다』(공쿠르상), 2003년 『피아노에서』 등을 펴내며 유럽권의 각종 문학상을 휩쓴 그는 최근 또 다른 행보를 보여 주었다. 실제 인물의 삶을 줄거리로 삼은 두 편의 소설, 음악가 모리스 라벨의 생애 마지막 날들을 그린 『라벨』(2006)과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설적인 달리기 선수 에밀 자토페크의 삶을 담은 『달리기』(2008)를 펴낸 것이다. 
『달리기』의 주인공 에밀 자토페크Emil Z?topek(1922~2000)는 실존 인물이다. 1952년 올림픽 게임에서 3개의 금메달을 거머쥔 육상 선수인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 치하 암울했던 시대를 살았다. 사회주의의 미덕을 진심으로 믿었음에도 결국 사회주의를 온전히 따를 수 없었던 자토페크의 파란만장한 삶이 담긴 작품 『달리기』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일반적인 전기 소설의 형식을 차용하되, 주인공이 달리기를 시작하기 직전부터 달리기를 그만두는 시점까지 한정해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에슈노즈의 차분하면서도 권위 있는 어조로 재구성된 에밀의 삶은 깔끔하고 우아한 문체의 힘 아래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인간 기관차>,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달리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모라비아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청년 에밀의 이야기이다. 금발에 키가 크고, 세모진 얼굴에 항상 웃음을 달고 다니며, 맑은 눈빛에 높은 목소리를 지닌 온화한 이 청년은 이제 열일곱 살로 정규 교육을 받은 지 오래 됐으며 신발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던 중 평소 운동을 싫어하던 에밀은 공장에서 달리기 경기에 참여하도록 종용받아 마지못해 달리기 시작하는데, 곧 자신이 달리기를 잘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남을 이기고자 하는 승부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과 더불어 대체 불가능한 그만의 의지가 에밀을 연이은 승리로 이끈다. 트레이너도, 담당 주치의도 없이 홀로 경기장 트랙에 섰던 에밀은 마치 기계와도 같은, 어찌 보면 괴상망측한 달리기 주법 아래 무조건 빨리 달린다.

20세기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적 상황은 이 <인간 기관차> 에밀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 풋풋한 청년이었던 에밀의 생애는 갈수록 스스로 의도치 않은 얼룩이 지기 시작한다. 체코슬로바키아 최고의 마라톤 선수로 부상하며 한때 공산주의자의 표본으로까지 칭송받던 에밀은 훗날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멸시받는다. 또한 그는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로 서구권에서 열리는 육상 경기에 종종 참여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남들의 권유로 시작한 달리기를 다시 남들의 권유로 그만두게 된다. 작가 에슈노즈는 이 굴곡진 시나리오를 있는 그대로, 어떠한 판단도 더하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기(傳記)가 아니다. 실존 인물인 에밀 자토페크를 주인공 삼아 그의 실제 삶을 토대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지만, 에슈노즈는 에밀의 전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일별하는 1차적인 방법 대신 제2의 방법을 택한다. 즉 에밀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부분, 달리기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달리기를 마치는 시점까지를 택해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다.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특별한 순간을 살아 낸 한 남자의 가장 빛나는 모습, 그 절정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고 있다.

달리기를 향한 맹목적인 열정, 그 순수한 쾌감
작가 에슈노즈는 특히 주인공 에밀 자토페크의 달리기를 향한 순수한 열정에 주목한다.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였던 <달리기 기계> 에밀은 그 독보적인 달리기 기법으로도 유명했는데,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속도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해 달리는 에밀의 스타일은 다음과 같았다. 에밀은 팔도 아무렇게나 움직였는데 주먹을 꽉 쥐고 가슴팍에서 혼란스럽게 굴러다니게 했다. 그런데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달리기는 팔로 하는 거라고 한다. 몸체를 앞으로 추진시키기 위해서는 다리에 체중 부담을 덜어 주도록 상반신을 이용해야만 한다. 장거리 경기에서는 머리와 팔의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은 효과를 낳게 마련이다. 그런데 에밀은 정반대였다. 그는 팔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힘을 너무 위에서 줘서 이상한 동작 선을 그리고 너무 높이 올라갔다가 뒤로 툭 떨어지며 흔들거리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터무니없는 몸짓을 하고 어깨 역시 덜덜 떨리고 팔꿈치는 무거운 짐을 든 것처럼 잔뜩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의 뛰는 모습은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는 권투 선수 같았고, 트랙을 게걸스럽게 뜯어 먹는 듯한 조화로운 다리 움직임만 빼면 그의 몸통 전체는 고장 나서 삐걱거리는 고통의 기계처럼 보였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남들처럼 하지 않았고 남들은 가끔 에밀이 아무렇게나 한다고 생각했다. - pp.50~51

에슈노즈는 에밀의 행동, 태도, 대화 등을 무심한 듯 담담한 어조로 읊어 가는 가운데 특유의 지극히 세밀한 묘사를 녹여 내 우리 스스로 에밀의 성격을 미루어 짐작하도록 한다. 에밀은 기존의 달리기 교본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위와 같이 스스로 터득한 달리기 주법을 고수하며 기록을 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고통을 즐기는 성격이었던 그는 피곤해지거나 속도가 느려질 것 같으면 되레 속도를 높이려 애를 썼다. 이렇듯 오직 <빨리 달리기>에만 관심이 있었던 에밀은 결국 누구보다도 앞서 달리게 된다. 에슈노즈는 이러한 에밀의 달리기를 향한 열정 가운데 스포츠 고유의 미(美)를 발견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이 아름다움을 재현해 낸다.
그리하여 『달리기』는 제목 그대로 <달리기>, 즉 달리는 행위 그 자체를 주목한다. 마라톤의 뼈를 깎는 고통과 시련을 말 그대로 가지고 노는 듯한 에밀의 달리기는 우선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이어 에밀은 우리가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달리기의 쾌감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해 가며 최대한 빨리 달리고자 하는 에밀의 맹목적인 열망이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든다.

주인공 에밀 자토페크
에밀 자토페크는 오늘날 체코 동부에 있는 코프르지브니체에서 태어났다.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로 1948년, 1952년, 1956년 올림픽에 참가해 각종 기록을 세우며 당대 최고의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 명성을 쌓았다. 그의 부인 다나 자톱토바 또한 1952년과 1960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투창 선수였다. 자토페크는 당시 효율적인 달리기 주법으로 여겨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주법을 사용했다. 달리기를 할 때 머리와 윗몸은 마구 흔들렸고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찡그린 모습이었다. 게다가 달리면서 색색거리며 거친 소리로 숨을 몰아쉬어 <인간 기관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달리기 선수로 성공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으며 공산당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당내 민주화 세력을 지지하면서 프라하의 봄 이후 각종 직위를 박탈당하고 우라늄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오랜 병치레 끝에 자토페크는 프라하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78세였다.

▶ 에밀 자토페크의 올림픽 기록
● 1948년 런던 올림픽
: 10,000미터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 5,000미터에서 은메달 획득
● 1952년 헬싱키 올림픽
: 5,000미터 · 10,000미터 · 마라톤 등 육상 장거리 3종목에서 모두 우승, 올림픽 신기록 달성
● 1956년 하계 올림픽
: 올림픽 2주 전 탈장으로 수술 후 참가해 마라톤에서 6위 기록, 다음 시즌 은퇴

작품 줄거리
제2차 세계 대전의 그늘이 드리운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 출신의 한 청년 에밀 자토페크는 집안 사정상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바타 신발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고 있다. 평소 달리기 따위는 시간과 돈 낭비라고 여기며 멀리하던 에밀은 우연찮은 기회에 공장 주최로 열리는 달리기 경기에 참가하게 되고, 이를 지켜 본 사람들은 그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남들의 끈질긴 권유로 마지못해 뛰기 시작한 그는 곧 스스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한번 달리기 시작하자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 끝에 결국 그는 각종 국제 경기의 우승을 거머쥐며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설적인 마라톤 선수가 된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물결에 휩쓸린 에밀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다.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육상 선수가 되어 한때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국민 영웅>으로까지 칭송받았던 그는 뒤이은 민주화의 부름에 양심껏 반응하고, 그 결과 달리기를 통해 누렸던 온갖 명예와 부를 빼앗긴다. 그리고 이제, 달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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