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콜린 윌슨
카잔차키스처럼 나에게 감동을 준 이는 내 생애에 없다. 그의 작품은 깊고, 지니는 가치는 이중적이다. 이 세상에서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생산하고 갔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잃었다.
- 알베르 카뮈
부드럽고 정교하면서도 강하고 극적인 힘을 보여 주는,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한 작품이다. - 토마스 만
엄청난 집중력과 흥미진진함 속에서 단숨에 읽고야 말았다. 그의 작품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마음을 심난하게 만드는 한편,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감동을 준다. - 마르탬 뒤 가르
카잔차키스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이다. - 존 스타인벡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상상력, 번뜩이는 역설과 시, 고뇌와 즐거움에 완전히 매료된다. - 타임
끓어오르는 활력과 열정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 새터데이 리뷰
중앙일보 <『그리스인 조르바』 함께 읽다, 자유의 의미 깨닫다> 2012.08.11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022713&cloc=olink|article|default
오늘의 책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제법 어려운 소설이라 그런지, 482쪽의 두꺼운 책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생각을 정리해온 노트까지 옆에 두니, 책을 뜯어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세계일보, 신정일 <[나의 애독서] 그리스인 조르바> 2012.05.18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0518021663&subctg1=&subctg2=
인생이란 살아도 살아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에 행운도 만나고 불행도 만나는 게 인생이다. 1981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뽑아 무심결에 읽기 시작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책을 읽으며 나는 밑줄을 긋기 시작했고, 단숨에 읽었다. 그 책을 읽고 나는 여러 생각에 사로잡혔다.
조선일보 <[만물상] '그리스인 조르바' 열풍> 2012.05.0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2/2012050203044.html
젊어 읽은 책은 평생 영혼을 쥐고 흔든다. 곽재구 시인은 스무 살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었다. 예순 살이 넘은 주인공 조르바의 호탕한 삶에 이내 사로잡혔다. 그는 소설 무대인 크레타섬에 가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삼십 년이 지나서야 꿈을 이룬 그는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아 묘비명을 읽으며 청춘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조선일보 <[파워 클래식] 현재에 집중하라, 자유로워지리라> 2012.05.0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2/2012050200322.html
"제 목표가 개처럼 사는 겁니다. 개는 어제 꼬리 친 걸 후회하지 않아요. '아, 어제 주인 왔을 때 이런 각도로 흔들걸' 하지 않죠. 밥을 먹을 때는 마치 이 밥만 먹고 죽을 것처럼 먹고, 잘 때는 자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듯이 잡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삶이 바로 이런 '개 같은' 삶이죠. 순간의 쾌락이 아니라 순간의 집중입니다."
조선일보, 김정운 <'조르바' 읽고 사표 던졌다, 자유다… 후회? 두려움? 개나 물어가라지> 2012.04.1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5/2012041501489.html
이럴 줄 알았다면 이 나이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는 게 아니었다. 매번 이름 참 특이하다고 느꼈던 조선일보의 어수웅 기자가 일본에서 안식년을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는 내게 연락해 '고전을 다시 읽자'라는 취지라며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할 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승낙할 일은 절대 아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난 이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무척 괴로워했다. 이 느닷없는 '자유'에 대한 망상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리스인 조르바'를 네 번 읽었다. 매번 조르바가 이야기하는 자유의 의미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처럼 진지하고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조선일보 <분방, 자유로운 영혼의 조르바… 책상물림 '나'는 그를 동경한다> 2012.04.1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4/15/2012041501497.html
현대문학이 창조해낸 가장 분방하고 원기 왕성한 캐릭터. 조르바는 '살아 있는 심장, 거대한 게걸스러운 입, 아직 어머니 대지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위대한 야수의 영혼'으로 대표된다. 배가 고플 때는 밥 먹는 일에만 전념하고, 갈탄을 캘 때에는 곡괭이질에만 전력투구하며, 여인과 키스할 때는 감촉 그 자체 이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특히 새로운 사랑에 대한 이 사내의 집착과 열정은 100m 세계 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가 발 벗고 뛰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
한겨레, 정혜윤 <조르바와 통영 어부> 2012.06.29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40319.html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다. “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라는 조르바의 말은 처음 읽은 이후 줄곧 내 입과 영혼을 지배해왔다. 음식이 정신으로 변하는 것, 물질이 인간으로 변하는 화학 작용은 카잔차키스의 평생에 걸친 관심사였다. 그는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는 것,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것에 놀랐던 것처럼 물 더하기 고기 더하기 포도주 더하기 했더니 조르바가 나온 것에 놀랐다.
동아일보, 최불암 <국민배우 최불암 “자유인 조르바,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 2011.12.17
http://news.donga.com/3/all/20111216/42676174/1
“나도 앤서니 퀸이 열연한 조르바 역할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그땐 책을 제대로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마음이 막 요동쳤지.”
1983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를 방문한 그는 뮤지컬로 만들어진 ‘그리스인 조르바’를 우연히 접했다. 당시 40대 초반이었지만 자유롭고 유쾌한 60대 노인 조르바에게 빠져들었다. 진짜 남자다운 남자 배우로 손꼽히던 앤서니 퀸에게 매력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연합뉴스 <"아버지는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분"> 2010.10.1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711627
지난 8월 별세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고(故) 이윤기 선생의 딸 이다희(30) 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전 번역가로 본격 데뷔했다.
주간조선 <조르바와 자유> 2012.04.07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00100032&ctcd=C02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셨나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작품입니다. 주간조선 마감날인 금요일(3월 30일) 아침 집에서 조선일보를 넘기다가 ‘그리스인 조르바’가 언급된 걸 봤습니다. 그 책 때문에 한 유명인사가 교수직을 그만두겠다고 나왔습니다.
시사인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의 맹세> 2011.11.24
http://news.naver.com/main/search/search.nhn?query=%B1%D7%B8%AE%BD%BA%C0%CE+%C1%B6%B8%A3%B9%D9&st=news.all&q_enc=EUC-KR&r_enc=UTF-8&r_format=xml&rp=none&sm=all.basic&ic=all&so=rel.dsc&detail=0&pd=1&start=1&display=20&page=2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어느 날 올리브 나무에서 유충을 떼어내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투명한 꺼풀 속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보였습니다. 미래의 나비는 아직 갇혀 있었지만 껍질을 뚫고 햇빛으로 나올 성스러운 시간을 기다리며 신비롭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충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겠죠. 아마도 곧 올 따뜻한 날과 자신이 언젠가는 상승하리란 것에 대한 믿음이겠지요. 유충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어서 빨리 유충이 신비롭게 날개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쪼그리고 앉아 유충에 따스한 입김을 후후 불어넣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입김을 받은 유충의 등이 저절로 찢어지더니 껍질이 서서히 갈라지고 아직 덜 자란 연둣빛 나비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주간한국 <디자이너 이상봉 씨가 추천한 '그리스인 조르바'> 2007.10.30
http://weekly.hankooki.com/lpage/culture/200710/wk2007103019410637140.htm
디자이너 이상봉 씨는 ‘나를 살찌운 한 권의 책’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추천했다. “인간의 영혼과 자유에 대해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요?”지난 해 여름 그리스를 여행하며 책을 접했다는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신동아, 함정임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를 찾아서> 2011.09.26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1/08/19/201108190500021/201108190500021_1.html
7월14일 오후 9시, 아테네 남서쪽의 외항(外港) 피레우스 항구. 크로노스 팰리스 호가 위용을 자랑하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스의 태양은 번갯불처럼 뜨거웠고, 어둠은 늦게 찾아왔다. 세계에서 몰려온 엄청난 이방인들 틈에 끼어 크레타행 크로노스 호에 승선했다.
경향신문, 백창화 <[책읽는 경향]현장에서-그리스인 조르바> 2008.1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2011812595&code=960207
대학 시절,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를 옆에 끼고 다니면 지성인처럼 보였다. 이 책을 얼마나 끝까지 읽고 싶었던가, 그리하여 지성인의 대열에 끼고 싶었던가. 그러나 결심은 번번이 좌절되고 이상하게도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다만 근처 대학 정문 앞에 있던 카페 ‘조르바’에는 매료되었다. 지나치게 어둡고, 커다란 평상 같은 책상에 긴 나무 벤치가 왼쪽에 한 세트, 오른쪽에 한 세트 놓여 있었다. 그리고 중심엔 ‘좌파와 우파를 위하여’라는 글이 걸려 있었다.
한국일보 <[오늘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 2007.10.25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0/h2007102517402384210.htm
957년 10월 26일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74세로 사망했다. 올해는 그의 50주기. 그가 살았을 때 미리 써놓았다는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동아일보 <[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4>그리스인 조르바 네이버> 2005.08.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311281
치수가 작은 옷을 입은 것처럼 삶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 단 한 벌뿐인 인생이 싸구려 기성품처럼 여겨질 때, 마음의 지퍼를 열어 꽉 졸라맨 감정을 해방시키고 싶을 때, 독자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걸작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라.
동아일보, 김균 <[내가 요즘 읽는 책] 창조적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 2001.08.17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080588
이윤기가 새로 고쳐 번역한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를 최근에 읽었다. 새 번역에서 조르바는 만년의 피카소가 그린, 거침없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가 살아있고, 유치하면서도 완전한 춘화들 같았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카잔차키스의 조르바가 원래 이랬는지 아니면 번역자의 적극적 개입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새 번역이 만들어낸 조르바는 끔찍히도 생생했다. 역시 이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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