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노르만 올러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23 열린책들 도서목록 Download

Home > 검색 결과   기계(하)(La Machine) 르네벨레토( Rene Belleto) 우종길 열린책들 1995년 05월 25일 A5 / 272 면 89-329-0108-2 오늘의 세계문학,벨레토 5,800 원 [절판]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했던 의사는 살인자와 서로의 몸에 영혼을 뒤바꾸는 실험을 한다. 살인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1995 도서신문 추천도서 1.줄거리 마르크 라크루아는 아름답고 지적인 아내 마리, 아들 레오나르와 평범한 삶을 꾸려 나가는 유능한 정신과 의사이다. 마르크는, 어머니를 혐오하는 감정이 지나쳐 여자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여자 넷을 칼로 찌르고 붙잡혀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는 미셸 지토를 수 개월간 치료해 왔다. 마르크는 그의 아버지가 해오던 일련의 과학 실험을 계속하여 다른 사람의 뇌에 있는 기억을 알아내는 기계를 만들려고 애써왔는데, 지토를 치료하던 기간중에 드디어 실험에 성공하여 <기계>를 만들어 내고 지토의 치료에 이용하기로 한다. 그의 실험실로 지토를 데리고 가 기계를 장착하고 작동을 시키나 서로의 기억 어느 부분만을 공유하려던 마르크의 실험은 너무 지나쳐서 두 사람의 정신 실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오랜 치료 기간 동안 마르크를 동경하고 존경하고 믿는 것으로 보이던 지토는 마르크의 몸으로 들어가게 되자 다시 자기 몸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한다. 지토의 몸을 한 마르크를 때려눕힌 지토는 자신의 유리한 위치-마르크의 겉모습을 지니고 있다는-를 이용하여 마르크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고 자신이 마르크 행세를 한다. 한편 병원에 갇힌 마르크는 본래 자신의 몸에 종양이 있다는 것과 마리안이라는 여자와 애인 사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용해 지토를 설득하거나 유인하고자 한다. 병원으로 찾아온 지토에게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자 지토는 겁을 내지만 몸을 다시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마르크는 정신 병원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마리안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 설득한다. 지토 몰래 아내 마리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몇 가지 계획을 세운 마르크와 마리안. 마리안이 쇼핑나온 마르크의 가족에게 접근하여 지토를 떼어놓으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어색한 순간들을 <지토와 싸운 일 때문>이라는 이유로 교묘하게 넘기던 지토는 마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마리안이 마르크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지토는 마르크가 마리안의 도움을 받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마리안의 집으로 찾아가 마리안을 협박하다가 죽이게 된다. 몇 차례 둘의 몸을 바꿀 기회가 있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지토가 거부하는 바람에 계속 실패하고, 지토는 더 끔찍한 생각을 해낸다. 아들 레오나르와 몸을 바꾸자는 것이다. 마르크-지토의 몸을 가진-를 잡아 마르크의 집 지하실에 가두어 둔 지토는 레오나르를 실험실로 데리고 가 전과 똑같은 실험을 되풀이한다. 이제 레오나르의 몸을 갖게 된 지토는 마르크의 몸을 한 레오나르도 지하실에 가두고는 엄마 마리를 죽이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함께 지하실에 갇힌 레오나르와 마르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서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힘을 합해 지토에 대항하려고 생각한다. 지토는 레오나르의 몸을 한 채 마리를 칼로 찌르고 범한다. 지하실로 내려온 지토는 그를 기다리던 두 사람에게 공격을 당하고, 마리는 죽기 직전 칼에 찔린 채 그들 앞에 나타나 충격을 던져 준다. 지토가 쏜 총에 부상을 당한 마르크는 정신을 잃고 있는 레오나르의 몸과 마르크의 몸을 하고 있는 레오나르와 함께 간신히 실험실로 돌아가 몸을 원상태로 바꾸고, 지토를 죽인 다음 끔찍스러운 그 모든 <기계>들을 부수어 버린다. 사건은 정신병자 지토가 마르크의 집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던 중에 일어난 것이라고 결론내려진다. 지독한 공포와 충격으로 레오나르도 죽자, 고통스러워하던 마르크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지토의 몸을 하고 만났던 한 여자 카타리나와 떠난다. 2.『기계』의 작가 르네 벨레토의 삶과 문학 르네 벨레토는 1945년 9월 11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이주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스페인 사람이었다. 벨레토는 <흑인 구역>이라고 불리는 리옹 교외의 빈민가에서 플라멩코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작품들 곳곳에서 눈에 띄는 프랑스 이민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뛰어난 음악적 감수성은 이런 어린 시절의 환경과 관련이 깊다. 정직했으나 늘 곤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던 부모 밑에서 자란 벨레토는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궁핍하고 음울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는 문학과 음악의 세계에서 도피처를 구하여 환상 문학과 기타 연주에 몰두했다. 작가가 되기 전, 벨레토는 기타 교습을 하기도 하고, 영화평을 기고하기도 했으며, 프랑스 어 선생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이따금 또 다른 내가 되고자 하는 변신 충동에 사로잡혔으며, 글쓰기는 변신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처음 벨레토는 시인이되고자 하였고, 훗날 『리옹에서 멀리』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1974년 그의 하이퍼리얼리즘적인 추리 단편을 모아 『죽은 시간』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하였으며 이 책은 그에게 장 레이 상을 안겨 주었다. 리옹의 특이한 환경에서 형성된 벨레토의 문학 세계는 그가 리옹을 떠나 파리에 정착한 이후에 빛을 발하게 된다. <리옹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령처럼 돌아오다』(81년 레테 상 수상),『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82년 추리문학 대상 수상), 『지옥』(86년 페미나 상, 리브르 앵테르 상, 최고 서스펜스 구텐베르크 상 수상)은 폭염이 짓누르는 8월의 리옹을 배경으로 고독하고 황량한 인간 내면과 사랑의 부재, 죽음의 충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리 소설, 애정 소설, 심리 소설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이들 작품은 각각 다른 등장 인물과 다른 사건이 펼쳐짐에도 <리옹, 8월>의 텅 빈 거리와 폭염이 인물이나 사건과 유기적으로 전개됨으로 <리옹 3부작>이라고 뭉뚱그려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지옥 이후 4년 동안 침묵을 지키던 벨레토는 1990년 여름 독자들에게 스릴러의 참맛을 느끼게한 작품 『기계』를 발표한다. 이전의 공포와 심리 소설 요소에 공상 과학의 성격까지 갖춘 이 작품은 더 치밀한 구성과 날렵하고 건조한 문체로 서스펜스를 한결 고조시켰으며 독자를 사로잡는 흡인력과 묵시록 장면과 같은 충격적 이미지 때문에 많은 경탄과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벨레토는 『유령처럼 돌아오다』이후 <변신>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추구해 왔는데 <변신>이라는 주제는 작품이 거듭될수록 명료해 지며 『기계』에서 절정을 이룬다. 벨레토는 주인공들이 <또 다른 나>로 변신하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보여 주다가 갑작스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 주인공을 공포와 광기의 미로로 내닫게 한 뒤 한번 변신을 경험한 주인공 내면의 변증법적 변화를 정밀하게 묘사한다. 벨레토의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에로티시즘이다. 핍진(逼眞)한 묘사와 함께 간간히 삽입되는 성애 장면은 대개 주인공의 변신과 위기를 예고한다. 고독한 삶과 거짓된 인간 조건이 고조될수록 인간 사이의 참된 유대를 향한 갈망이 더욱 강렬해 진다. 그래서 벨레토의 소설에 나오는 남녀는 참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 사랑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미로로 진입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서 벨레토의 에로티시즘은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기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마르크의 몸을 한 지토와 마리의 사랑, 지토의 몸을 한 마르크와 마리안의 사랑이 농밀하게 묘사된다. 3.『기계』에 관한 프랑스 언론의 서평 (1) 『르 피가로』, 90년 6월 5일, 파트릭 그랭빌의 서평(전문) 심리 오페라 1986년에 페미나 상을 받은 『지옥』 이후로 벨레토는 새로운 묵시록을 써 왔다. 『기계』를 내놓음으로써 그는 이전의 그 어느 것보다도 무시무시하고 괴기스런 자식을 낳았다. 벨레토가 집착해온 중심 주제는 <다른 존재가 되기>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즉, 육신 갈아입기, 변신, 부활이 그가 집착하는 주제다. 그 주제는 『유령』 이후로 자리를 잡았다. 삶이란 한시라도 빨리 다시 태어남으로써 벗어나야 할 지옥이다. 벨레토의 소설은 우리에게 하나의 미로를 제시하곤 한다. 작가는 그 미로 속에서 무수한 환상과 격렬한 갈등을 결합하고 발전시킨다. 자아 분열, 대체, 도착(倒錯)이 곳곳에서 나타나 서로 충돌한다. 『기계』는 그런 경향을 극대화한 하나의 심리 오페라이며, 머릿속에서 뭔가가 우글거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스릴러다. 예전에 누군가가 벨레토의 작품들을 새로울 것이 없는 패러디, 추리 소설의 상투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교묘하게 재주를 부린 것으로 분류했던 것은 섣부른 일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이야기의 필연성에 전보다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기술적인 노련함, 재치와 익살, 우화적인 과장 등을 넘어서서, 벨레토는 톱니바퀴 장치 같은 박진한 필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결코 탐미주의자의 곡예로 폄하될 수 없다. 무수한 환상들이 어우러지면서 독자들을 사로잡고, 깨어 있는 채로 격렬한 악몽을 꾸게 만든다. 최면에 걸린 독자들은 있을 법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기꺼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것들이 현실 감각과 논리보다도 더 매혹적인 심층의 진실로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기계』는 정신과 의사 마르크 라크루아와 정신병 환자 미셸 지토를 현기증 나는 거울 게임 속에서 대결시키고 있다. 마르크는 지토가 자기를 따르게 만들었다.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지토는 무의식적인 측면에서 마르크와 닮은 구석이 많다. 지토는 여자와 자 본 적이 없는 숫총각이다. 그는 세 여자를 칼로 찔러 다치게 했고, 네 번째 여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어머니에게 심리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상처를 받은, 청교도적이고 소아병적이며, 이성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서 창녀 살해범의 원형이 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르크와 지토의 관계는 정신분석학적인 상호 전이를 통해 맺어진 것이다. 그런데, 작가 벨레토는 <심리 컴퓨터>라는 기계를 이용함으로써, 지토의 치료와 그 치료가 암시하는 상호 교환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마르크는 숨겨진 실험실에서 뇌에 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다른 사람의 뇌로 옮길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놓고 있었다. 처음에 실험은 성질이 판이한 개 두 마리를 상대로 행해졌지만, 나중에는 주인공들을 대상으로 해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텔레파시 기계를 이용하여 마르크와 지토는 잠시 인격을 서로 바꾸고 자기들의 육체에서 해방된다. 벨레토는 기술적인 호사를 부려가며 정보공학적이고 자기학적인 식인귀라 할 만한 그 기계를 묘사한다. 미셸 지토와 마르크가 서로 상대방의 뇌와 육체에 들어가는 대목에 이르러 소설의 긴장은 급격히 고조된다. 극적인 반전! 지토는 자기 육체에 다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기 의사를 함정에 빠뜨리고 그를 자기의 육신 속에 가두어 버린다. 지토는 마르크의 허울을 뒤집어 쓴 채 자기의 아주 오랜 꿈이자 모든 환자들의 망상이라 할 만한 일, 즉 자기가 가장 숭배하는 존재인 정신과 의사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을 성취한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독자들도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의 육체 안에 들어간 지토는 마르크의 집과 아내를 차지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다른 인물인 마르크의 아들 레오나르는 지토에 의해 극단적인 잔혹 행위에 깨여들게 된다. 자기 육체와 아내와 아들을 되찾으려는 마르크와 지토가 대결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을 긴장은 절정에 달한다. 벨레토는 이 엄청난 지옥의 모든 측면을 철저히 탐색하면서, 두 주인공의 내면에 있는 증오, 사랑, 새디즘, 과대 망상, 편집증 등을 낱낱이 드러낸다. 마르크는 자기 것을 빼앗긴 피해자의 역할을 맡고 있지만, 사실 그는 겉보기보다 더 수상쩍다... 결국 그는 자유를 얻게 되고 백만 장자인 아름다운 여인과 떠난다. 그 떠남이 이 소설의 주제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지토는 마르크의 악마적 찌꺼기, 감추어진 흉칙한 분신, 저주받은 부분이다. 두 사람은 결국 근친상간적이고 범죄적인 쌍생아다. 이 소설의 으시시한 결말에서 작가의 최면은 정점에 달한다. 이 소설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우리를 다른 육체 속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스스로를 알게 하고, 우리의 신경을 도려내는 무시무시한 기계다. 오이디푸스가 대담하게 4륜 구동 닛산 테라노를 타고 갑자기 자아의 무대 위에 나타났다. 놀라운 일이다! (2) 『르 몽드』, 90년 6월 8일, 피에르 르파프의 서평(전문) 르네 벨레토, 소설의 엔지니어 르네 벨레토는 기술자가 기계를 만들듯이 소설을 쓴다. 그 기계는 톱니바퀴, 배기 장치, 도르래, 피대 따위로 이루어진 구식 기계가 아니라, 전기 접속 장치와 정보 처리 장치, 암호 체계, 스크린, 지시등 따위를 갖춘 초현대적인 시스템이다. 그 기계들은 작동하는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놀랍고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벨레토의 소설들은 음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불안정하고 다치기 쉬운 인물이 있고, 그가 사악한 힘의 재난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 재난은 숙명적이어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벨레토의 최신작 『기계』는 자신의 문학적 창조 행위에 대한 고풍스런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정신과 의사 마르크 라크루아는 <심리 컴퓨터>라는 기계를 발명한다. 한 사람의 지적이고 성격적인 정보 전체를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게 하는 기계다. 마르크는 자기가 발견한 것을 자기 환자 중의 하나인 어떤 정신병자에게 실험한다. 그 환자는 상습적으로 여자들을 칼로 찌르는 자이다. 여자들과의 육체적 접촉은 그를 미치게 만든다. 애당초 마르크는 잠시 동안만 자기 환자 미셸 지토와 인격을 교환해서 프로이트적인 전이의 치료 효과를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은 마르크가 예상한 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의사가 범죄자의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 반해서, 이제 자기 의사의 외양을 갖게 된 지토는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자기 육체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지토가 자기를 택하기보다는, 커다란 호화 주택과 아름다운 아내와 매력적인 정부와 사랑스런 아들을 가진, 잘생기고 부유한 정신과 전문의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는 정신 병원의 병실에 갇히게 되고, 환자는 상류 사회의 안락한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만일 진짜 의사 마르크가 청각 신경의 초기 암으로 고생하지 않고, 미치기는 했지만 약삭빠른 지토가 고통스런 육체 안에 살기보다 더 오래 사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이 모든 일이 부당하지만 평화로운 가운데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줄거리가 그런 식으로 되었더라면, 『기계』는 그저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소설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다음 부분에는 지옥을 향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낙하하듯, 살인과 강간과 공포 영화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라크루아 박사의 고장된 기계가 사악한 결과를 많이 빚어내면 빚어낼수록, 또 공포가 이성의 마지막 부분까지 악성 종양으로 잠식해 들어오면 올수록, 또 이야기의 흐름이 칼날이나 가윗날처럼 서슬 푸르러 지면 질수록, 작가는 자기가 작동시킨 그 있을 법하지 않은 끔찍한 기계를 자유자재로 제어하고 있는 셈이 된다. 작가는 우리의 정신을 비우고 자기의 고뇌와 환상과 불안을 우리에게 전이시키려고 단단히 별렀다. 즉, 400페이지를 읽는 동안 우리로 하여금 그가 되게 하고, 그의 뇌와 신경에 머물게 하고, 그의 심장 고동을 느끼게 하고, 그가 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하고, 그의 공포를 똑같이 경험하게 하려고 미리부터 작정했다. 그 때문에, 그는 우리의 온갖 군데를 다 붙잡아야 하고, 그가 맺어 놓은 어떤 관계도 끊어지지 말아야 하며, 어떤 과도함도 지나치지 않게 보여야 하고, 어떤 망상도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한다. 그래서 『기계』는 분명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먼저 우리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각양 각색일 수밖에 없는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사로잡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들의 뇌를 사로잡기보다는 쉬울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우리의 뇌까지도 장악해 버린다. 이 소설이 일으키는 기억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어린시절의 공포와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기쁨을 떠올린다. 쾌락과 금기, 유혹과 반발, 충족된 욕망과 금지된 선망의 혼란스럽고 사악한 게임. 벨레토는 겨우 감지될 만큼 가벼운 터치로 그것을 일깨우고있다. 가벼운 터치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누적되기만 하면 뚜렷한 반점이 되어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발전되어 가고 악몽이 구체적인 모습을 띄어 감에 따라, 작가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는 확신, 작가가 자기 기계에 대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한낱 속임수이고 작은 바늘을 움직여 우리의 시선을 붙들어 두려는 숫자판 같은 것에 불과하다는 확신이 고개를 쳐든다. 그러는 사이에 괴물의 내장 속에서는 중요한 일이 다 끝나 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동화(同化)의 기호를 읽어 내고 암호를 해독하고 일관된 체계를 다시 세워 보려고 절망적으로 애를 쓴다. 우리는 우리의 교양을 총동원하면서 해석에 집착한다. 프로이트적인 상황,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모태로 회귀하는 퇴행 등 몇 가지는 명백해 보인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유형이라는 다른 잣대를 들이밀 수도 있다. 인간은 현상의 총합과 일치하지 않는 또 다른 존재인가? 라는 형이상학적 질문도 나옴직하다. 하지만, 그 중의 어떤 맥락으로 읽더라도 『기계』의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를 얻지는 못한다. 어떤 맥락도, 중앙 컴퓨터, 즉 의미의 핵심에 도달하기 전에 끊어져 버리거나 다른 맥락과 뒤섞여 버린다. 르네 벨레토는 소설이 닫힌 구조로 마무리되는 것을 피하고, 독자에게 긴 여운을 남기려는 듯, 서술적인 기능이 역으로 이용된 일종의 에필로그 형식으로 소설을 끝맺고 있다. 비극이 일어났고, 유혈이 낭자한 그 광기의 에피소드에는 이미 합리적인 설명이 주어졌다는 식이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자기들의 상처를 붕대로 감으면서, 숨을 고르고 정신을 추스른다. 지나간 비극에 아랑곳하지 않고 삶은 계속된다. 소설이 그렇듯 평화롭게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작가는 결말에 이르러 거의 쓸모없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단락을 덧붙인다. 그 단락은 앞에 나오는 소설 내용 전체와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다. 그래서 벨레토의 원고에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이 『기계』의 또 다른 조립도를 들고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 조립도 역시 십중팔구는 이전 것들만큼 부정확하고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미증유(未曾有)>라는 말을 함부로 할 건 아니지만, 이 공포 소설은 아방 가르드로 명성이 높은 작가들조차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 즉 작가와 독자와 <책이라는 기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미증유의 책이다. 우리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벨레토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면, 정신의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그것은 곧 그가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 우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상상이 아니라 수천의 상상, 죽음에 대한 하나의 불안이 아니라 다수의 불안, 하나의 욕망이 아니라 집단의 욕망은 흡혈귀와 미친 과학자를 다룬 가장 끔찍한 이야기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3) 『엘』, 90년 6월 11일, 피에레트 로세의 서평(발췌) <레오나르는 어머니가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렸다가 그녀를 죽이기로 하였다.> 르네 벨레토의 새 소설 『기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독자들이 느끼게 될 공포를 예고하는 문장이다. 스스로를 르네 벨레토의 팬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유령처럼 돌아오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지옥』에서 이미 경험한 전율을 다시 맛보게 되리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기계』가 가져다 줄 전율에 비하면 이전 것은 그저 상냥하고 순치된 전율일 뿐이다. <움직이는 기계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 뜻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겁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 장인의 긍지 같은 것을 느낍니다.> 르네 벨레토의 말투가 자못 담백하다. 말수도 적고 남과 잘 어울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복은 많은 작가다. 1986년에 『지옥』으로 페미나 상을 받기 전에, 그는 같은 작품으로 최우수 서스펜스 구텐베르그 상과 리브르 앵테르 상도 받았다. 1983년에는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로 추리 문학 대상을 받은 바 있다. 미셸 드빌은 그 작품을 가지고 『한 순간이라도 지체하면 위험하다』라는 유명한 영화를 만들었다. 벨레토의 수상 경력은 일찌기 1974년부터 시작되었다. 첫 창작집 『죽은 시간』은 장 레이 상을, 『유령처럼 돌아오다』는 레테 상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계』는 페이지마다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무시무시한이야기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라는 조건과 결부된 막연한 불안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포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는 환상 문학에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교 2,3학년 때는 오로지 그런 책들만 읽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벨레토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리옹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의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프랑스인이었다. 처음에 그는 착실한 학생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내 환경, 그 궁핍과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었지요.> 그러다가 학교가 감옥과도 같은 폐쇄적인 공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환상 문학과 음악에서 도피처를 구하였다. 자기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 그랬듯이, 르네 벨레토는 문학과 기타를 가르치던 선생이었다. 『기계』는 한 남자의 가공할 초상화이며, 여전히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 주고 있는 남성의 조건에 관한 소설이다. 그것은 또한 이미 고인이 된 어떤 이에게 바치는 책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1년 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리옹에 있는 전기 용품 공장의 노동자이셨지요. 정당 따위는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만일 좌파에 속한다면, 그건 한 인간이 노동에 짓눌리고 으깨어짐으로써 그의 지적인 능력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친은 2차 세계 대전 때 전쟁 포로로 독일의 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영구적으로 움직이는 기계 장치를 구성하셨다고 합니다. \'그 생각이 나에게 힘을 주었단다\'라고 제게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물리학 지식을 토대로 아버지가 구상하시던 영구 기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을 드렸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제 말을 믿지 않으셨어요. 저는 『기계』라는 이 소설로 아버지가 꾸셨던 꿈을 실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 『리베라시옹』, 90년 5월 24일, A. 드 고드마르의 기사(부분) 지킬 박사와 벨레토 씨: 기계에 의한 살인 P.O.L. 출판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며칠 전 르네 벨레토는 자기 편집자 폴 오차코브스키-로랑스에게 짤막한 원고 하나를 가져왔다고 한다. 『기계에 관한 일기』라는 책이름: 이 붙은 그 원고는 아포리즘처럼 잘 다듬어진 한두 줄의 짧은 문장 100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내 활에는 시위도 없다.> <문을 이토록 세게 닫는 만큼, 다시는 열리지 않으리라.>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을 두 팔로 꼬옥 껴안는다. 그것을 정말 잃어 버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손이 잘리면, 그 잘린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 등등. 거의 한결같이 불길하고 절망적이고 잔인한 경구들이다. 르네 벨레토는 그의 새 소설 『기계』를 쓰는 동안에 그 문장들을 썼다고 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며, 완전히 병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다. 서재에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서재를 빠져 나와 옆방에서 이 아포리즘들을 썼다.\" 그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기계』는 그만큼 악마적인 책이다. 르네 벨레토는 『유령처럼 돌아오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지옥』 등의 이전 소설들에서 보여준 어둡고 내향적이고 고뇌에 찬 경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 냉혹하고 잔인한 기계 장치를 만들어 냈다. 그의 정교한 기계 장치가 빚어 내는 서스펜스는 유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기계를 통해 서스펜스를 이끌어 낸다는 착상은 환상 문학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비결>이다. 환상 문학 안에서 자기의 첫 무기를 벼린 바 있는(1974년 『죽은 시간』) 벨레토가 이 소설에 도입한 것은 시간을 탐구하는 기계나 로봇을 제작하는 기계가 아니라, 환자들의 이상 행동을 환자의 <내면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한 정신과 의사가 고안한 <심리 컴퓨터>라는 기계다. 그것을 이용하면 두 사람 사이에 심리적 실체를 전이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기계는 발명자의 의도와는 달리 아주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르네 벨레토는 1945년 9월 11일 리옹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 사람이었다.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독학으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 집 지하실에서 은밀한 열정을 가꾸어 가고 있었다. 영구 기관을 발명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기계』의 주인공 마르크의 아버지도 똑같은 꿈을 가지고 있다). 영구 기관에 대한 그의 집념은 5년 동안 포로로 갇혀 지냈던 독일의 수용소에서 싹텄다. 수용소의 험난한 생활이 그로 하여금 밤마다 꿈을 꾸게 만들었던 것이다. 르네 벨레토에게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든 움직이지 않는 기계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아버지의 영구 기관은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어린 벨레토는 움직임에 대한 열망과 공포를 동시에 갖게 되었다. 나중에 벨레토는 그 계획이 부질없는 것이라며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그 헛된 꿈을 버리지 않았다. 르네 벨레토는 \"이 책으로 나는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아닌게 아니라, 소설 기계의 <심리 컴퓨터>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 성 안나 병원의 정신과 과장인 서른아홉 살의 마르크 라크루아는 치밀한 계획을 짜고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 고안해 냈다. 루브시엔에 있는 자기네 옛집 지하실에 비밀 실험실을 마련했고, 일종의 초전도체로서 신경 작용의 전이를 실행할 수 있게 하는 자기 합금을 발견했으며, 그 합금을 통해 교환된 <영혼>의 미세한 부분들을 재구성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었고, 기계가 완성된 다음에는 성질이 판이한 개 두 마리를 상대로 첫 실험을 했다. 자기와 환자의 정신 사이에 전이가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자기의 임상 관찰을 보완하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다. 즉, 다른 사람의 뇌에 들어가 그 안에 머물면서 상대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광기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자는 것이다. 세인들을 열광시킬 만한 기도(企圖)이자 조물주적 야심이며 가공할 지식욕(libido sciendi)이다. 그러나 야망이 큰 만큼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날에는 고통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기계는 너무나 성능이 좋아서 <심리적 실체>의 전이를 총체적으로 이루어 낸다. 그럼으로써 정신과 의사 마르크 라크루아는 자기 환자 미셸 지토의 육체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네 여인을 칼로 찌른 혐의를 받고 있는 정신 병자가 자기 의사의 육체 안에 자리를 잡는다. 그때부터 소설 『기계』의 서스펜스는 정점을 향해 치오르고, 스릴러 애호가들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벨레토의 이전 소설과는 달리, 『기계』는 리옹이 아니라 현재 작가가 살고 있는 파리를 무대로 삼고 있다. 『유령처럼 돌아오다』나 『지옥』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생생하게 그려졌던 도시가 『기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도시는 비극이 펼쳐지는 추상적인 공간일 뿐이다. 벨레토에게 파리는 리옹과 같을 수 없다. 그는 자기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손에 지도를 든 채, 자기가 알고 있는 곳들을 징검다리 삼아, 루브시엔에서 보쥬 광장까지, 이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성 안나 병원에서 벨빌까지 파리 시내를 돌아다닌다. 리옹은 그가 태어나고 오랫 동안 살면서 발씨를 익혀온 곳이어서, 그만이 아는 비밀이 많았지만, 파리는 사정이 다르다. 그는 기껏해야, 보쥬 광장에는 여름의 햇살이 사방에서 비쳐드는 것 같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 라크루아 박사가 차를 타고 샹젤리제를 가로지르며 워싱턴 가(街)와 베리 가 사이에 있 는 길로 사라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길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소설 『기계』에는 이렇듯 하이퍼리얼리즘과 왠지 불안한 느낌을 주는 부정확한 측면이 혼재되어 있다. 그런 점을 제외하면, 르네 벨레토는 장르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다른 환상 문학의 이야기에서처럼, 풋내기 마법사가 신 아니면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영역을 넘보다가 벌을 받는다. 『기계』의 논리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대국자들끼리 체스를 둘 때 나타나는 가차없는 논리다. 상대가 잇달아 장군을 불러대는 와중에 너무 많이 노출된 말들이 죽어 버린다. 의사로 분장한 광인이 일체 벌을 받지 않으면서 흉포한 짓을 자행한다. 말 그대로 하나의 살인 게임이자 격렬하고 피비린내 나는 사라방드다. 오이디푸스가 프랑케슈타인과 지킬 박사와 프로이드 씨를 만난다. \"나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칼의 날밑까지 밀어넣으려고 했다. 해피 엔딩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중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칼날이 심장에 닿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 하는가? 이 끔찍한 『기계』는 어떤 상처, 어떤 비밀스런 구마경(驅魔經)을 감추고 있는가? 그 질문에 르네 벨레토는 다소 두려움이 섞인 음성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이 기계에서 벗어남으로써 나는 문학에서 벗어났고, 삶과 글쓰기 사이에서의 그 불가능한 선택에서도 벗어났다. 이 책은 내 삶을 지켜주었다. 심리 컴퓨터를 만든 내 주인공처럼 나는 우리가 영원히 움직히는 완벽한 기계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문학도 그런 기계가 될 수 있다. 내 주인공은 자기가 발명한 기계가 세상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온 세상의 경탄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설을 꿈꾸었다. 하지만, 문학과 마찬가지로 기계는 삶을 방해한다. 나는 언제나 책 뒤에 숨어서 나를 지켰다. 이 소설에 나오는 기계를 부수어 버림으로써 나는 그 환상을 깨뜨렸다.\" 소설 『기계』는 현대 과학의 환상, 유전자 조작, 세뇌 따위에 대한 고발로 읽힐 수도 있을까? 그 질문에 르네 벨레토는 그런 걸 의식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보다 더 오래되고 음험한 어떤 것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갖고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조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관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일종의 우울증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그로 하여금 육체와 의학에 관련된 모든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는 점을 인정한다. 자기의 민감함이 빚어낸 허구가 기이하게도 현실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옥』이라는 작품에서 한 아이가 리옹 교외의 한 농장에 있는 지하실의 비밀 병원에서(지하실의 은밀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기계』가 처음이 아니다!) 눈알을 적출당하고, 그 눈알이 부유한 볼리비아 사람의 눈먼 아들에게 이식되는 사건을 상상한 바 있다. 그것은 외과적으로 불가능한 수술이다. 그런데 그는 몇 달 전에 신문에서, 유괴 당한 사람에게서 빼낸 안구가 불법 거래되는 일이 콜롬비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등장 인물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는 지하실의 이미지를 가진 벨레토의 소설들은 언제나 어두운 부분을 지니고 있다. 『기계』의 어두운 부분은 무의식의 지지를 받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신분석에 관해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는 독자라면 인격의 전이(轉移)라는 이야기에 많은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라크루아 박사의 기계를 이용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갈 수 있고, 사악한 분신이 자기 속에 머물게 할 수도 있으며, 아들의 육체에 들어간 아버지가 어머니가 된 자기 아내와 사랑을 나눌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벨레토가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그 기계를 교묘한 구성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몸 속에 들어간 정신병자 지토가 아이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누구나 어느 순간엔가는 자기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꾸지 않는가?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것이 있지 않은가? 잠자는 아이를 깨우면 안 된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잘못이 아닌 일 때문에 벌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의 내면에 악이 자리잡은 순간, 나는 그 아이들을 벌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 안에 남아있지만 이제는 아이의 것이 아닌 유아적인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이다.\" 르네 벨레토는 \"적에게 쫓기는\" 기분을 느끼며 『기계』를 썼다고 한다. 서스펜스를 높이느라고 건조하고 외과적이고 거의 비개성적인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그는 여느 때와는 달리 앞부분을 다시 읽거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탈고를 했다고 한다. 이 책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책을 만든 일>은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자기 혼자기계를 고안하고, 그 기계가 움직이게 만든 것에 대해 <장인의 긍지>를 느끼고 있다. 물론 대학의 권위자 한두 사람에게 약간의 조언을 구하기는 했다. 그는 그런 기계의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린 스케치와 설계도를 간직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심각한 악성 종양이 있었는데, 이제 그는 그 종양을 완전히 도려낸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 이상한 기계는 마지막 스위치를 돌리면 작동을 중단한다.> 그는 『기계 일기』의 어디에선가 그렇게 쓰고 있다. (5) 『레벤망 뒤 죄디』, 90년 6월 7-13일, 앙드레 클라벨의 기사(발췌) 지옥을 향해 가는 벨레토 벨레토의 세계가 얼마 만큼이나 어두워졌는지를 가늠해 보려면 『기계』를 세 페이지만 읽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미리 알려두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독자들은 이 책을 읽다가 도중에 손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환각을 일으킬 만큼 서스펜스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히치코크의 영화처럼 짜인 400페이지를 진짜 악몽을 꾸는 것처럼 읽고 나면, 이 소설은 폴란스키 식의 살육으로 끝을 맺는다. 그 대목에서 우리는 정신 이상자와 게임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 천만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기계』의 강점은, 환상 문학이나 웰스 류의 공상 과학으로 전혀 빠져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스펜스의 톱니바퀴가 대단히 강력하고, 죽음의 바이스가 시시각각으로 조여들기 때문에, 우리는 첫머리에서 전혀 있을 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을 잊고, 가슴을 졸이며 거리를 두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벨레토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늘 다른 사람의 몸 안에 스며들어 가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가 미셸 지토라는 인물, 즉 성관계를 전혀 가져 본 적이 없고 다른 사람의 육체 안에 들어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는 정신병 환자를 상상하게 되었다. 기계에 대한 착상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이 기계는 물론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주제에 관해 나는 오랫동안 자료를 조사했고, 뇌를 연구하는 몇몇 전문가들에게 묻기도 했다. 이 소설의 몇몇 장을 쓸 때는 사실 나 스스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기계는 나를 음산한 곳으로, 죽음과 광기와 근친 상간으로 이끌고 갔다. 나는 이 기계의 제작자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희생자인 셈이다.\" 『지옥』을 출간한 뒤 4년 동안, 벨레토는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하고 이 소설에 묻혀 지냈다. \"나는 먼저 전체적인 얼개를 짰다..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미리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 책에서 벗어나려고 아주 빠른 속도로 써내려 갔다. 한시라도 빨리 뚜껑을 씌워 버리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가 안심을 할 수 있고,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쓰고 나서, 세세한 부분을 다듬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이 있을 자리에 있게 하려고 녹초가 되도록 수정 작업을 했다.\" 소설 『기계』에 등장하는 <닛산 테라노>라는 자동차는, 소설의 4분의 1정도가 그 안에서 이루어질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자동차에 대해서, 벨레토는 대단히 프로이트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시킬 자동차가 한 대 필요했다. 그래서 서점에 나가 『오토-주르날』을 샀는데, 거기에서 뜻하지 않게 그 4륜 구동차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퍼뜩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닛산 테라노의 측면창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는 대목에서, 나는 대뜸 <오이디푸스의 삼각형>을 떠올렸다.\" 이 소설을 읽노라면, 우리는 닛산 테라노를 몰고 지옥으로 돌진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동차의 라디오에서는 기타의 선율이 쏟아져 나온다. 벨레토는 글을 쓰는 도중 틈이 날 때마다 기타를 잡는다. 그는 기타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 <앙텐2>에서 방영하고 있는 <리옹 사람>이라는 탐정물 시리즈의 시나리오를 쓰고 주제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말과 음악에 모두 능한 벨레토는 프랑스 문학에 가장 많은 생기를 불어넣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빨간색 잉크와 검은색 잉크로 페렉과 챈들러를 범죄의 세계에서 화해시키고 있다. 일단 그의 『기계』를 손에 잡는 날에는, 하룻밤을 하얗게 새우는 것쯤은 각오해야 하리라. (6) 『피가로 마가진』, 90년 6월 9일, 공쿠르 상 심사위원 프랑수아 누리시에의 서평(발췌) 『기계』: 공포의 활강 나는 르네 벨레토의 신작 소설을 서평 대상으로 고름으로써 스스로 궁지에 빠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기계』는 분해되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제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참신성을 잃게 만들고 독자들의 즐거움을 손상시키게 된다. 그러니, 이 서평에서 내가 비평가의 상반된 의무, 즉 해설과 비밀 엄수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더라도 나를 탓하지 말기를 바란다. 벨레토는 15년 사이에 8권 의 저서를 출간하고 6개의 상을 받았다. 그 상 가운데는 1986년의 페미나 상도 포함되어 있다. 페미나의 여성 심사위원들이 벨레토에게 상을 준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다. 공쿠르 심사위원회에서는 내가 자랑스럽게도 벨레토를 자주 거명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그 점에서 페미나 심사위원회의 여성들은 공쿠르 심사위원들보다 대담하다. <대담하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벨레토가 자프리조나 페낙처럼 <추리 소설 쪽에서 왔기에>, 그를 주목하기에는 뭔가 망설여지는 점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그쪽에 머물러 있었거나, 아니면 격렬한 플롯과 원활한 톱니바퀴를 장기로 삼는 추리 소설 작가들의 노하우를 정통 소설 클럽에 등록된 작가들의 <문학적인> 배려와 혼합하면서 거의 추리 소설 쪽에 머물러 왔다. 검은색 표지의 추리물에서<백색 표지> - 흔히들 <격조 높은 작품>으로 여기고 있는 - 의 소설로 나아가는 길은 험난하고 경이롭다. 나는 소설 문학의 혁신은 바로 그 길을 통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추리 소설에서 정장 차림의 소설로, 말하자면 망셰트에서 그라크와 르 클레지오로 이끄는 길을 통해서 우리의 소설이 혁신되리라는 것이다. 그런 행로를 거치는 사람이 그리 흔한 건 아니지만, 그건 별개의 이야기이다. 벨레토는 이전 소설에서 추리 소설의 전략에 기여하는 <문학적인> 문체, <문학적인>접근 방식을 사용하였다. 『기계』에서 그는 자기 문체에 굴레를 씌웠다. 오로지 효율성만을 염두에 두고 문체에 억압을 가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독자들조차도 머뭇머뭇하던 태도를 버리고 이내 그 어마어마한 공포의 활강에 몸을 맡기게 될 것이다. (7) 『르 푸앵』, 90년 5월 28일, 자크-피에를 아메트의 기사(발췌) 프랑스 문단에는 추리 소설을 통해 글쓰기를 배운 젊은 무뢰한들이 이따금 나타나, 우수에 찬 말들과 아름다운 문장들이 비단옷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는 프랑스 소설에 충격을 주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는 한다. 벨레토도 그런 무뢰한 중의 하나이다. 그는 망셰트와 페낙 및 다른 몇몇 작가들과 함께 거리낌없는 서술 기법으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고급 문학 동네에 불쑥 찾아든 사람이다······. 소설 『기계』는 일체의 신학적 구원이나 합리적인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정신적 궁지에 내던져진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듯 본질적인 것을 보여 주기 때문에 이 소설은 충격적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오싹거림과 미열이 느닷없이 찾아들고, 그 미미한 전율과 열기는 마침내 독을 품은 거대한 신경증적 열꽃으로 피어난다······. 추리 소설이라는 거친 학교에서 단련을 받은 벨레토는 거기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가꾸어 왔다. 하지만 그는 평행 구조와 우연의 일치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 그는 이제 추리 소설에 뿌리를 둔 모든 수사법과 도구들을 잊어버려야 하며, 자기의 야성과 광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좇아야 하고, 대단히 모호하고 마술적인 자기의 강박 관념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것이다. 그의 세계는 아주 강력하고 독특하기 때문에, 전락과 죽음과 저주의 시가 단순한 예증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 되고 신화가 된다. 그의 재능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을 믿게 될 것이다. (8)『뤼마니테』, 90년 6월 13일, 클로드 브레보스트의 기사(발췌) 브리지트 마생과 장 마생 부부의 지도를 받아 발간된 『서양 음악사』라는 책에서, 필립 보쌍은, <새로운 선법(旋法)과 고전적인 조성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았던 프레스코발디는 두 영역을 넘나들면서 그 과도기적 상황이 빚어낸 이중성을 십분 활용하였다.>고 쓰고 있다. 느닷없이 초기 바로크 시대의 거장인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1583∼1643)의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곧 그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는 사전들이 영혼의 <전이>에 관한 교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전생설(轉生說)에 관한 것이다. 탁월한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는 그 문제에 대해서,<우리 조상인 갈리아 사람들은 영혼이 영원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겨간다고 믿었다.> 고 쓴 바가 있다. 우리가 진보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영혼을 한 육체에서 다른 육체로 옮기는 기계, 그것도 동시대인 사이에 영혼의 전이가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기계를 상상할 수 있다. 벨레토의 소설에 나오는 기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심리 컴퓨터>라 명명되 기계는, <영혼>이나 <의식>, 혹은 <물질>도 아니지만 <영혼>도 아니지만 자콥 보메가 <베젠Wesen>, 즉 인간의 본질이라고 명명한 것과 비슷한 것, 작가가 <심리적 실체>라고 부른 어떤 것을 교환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다. 벨레토는 장인이 기계 장치를 조립하등 자기 이야기를 꼼꼼하게 구성한다. 그는 서정성과 유머를 세심하게 배합한 산문으로 음악이 관류하는 이야기를 엮어내고 있다. 슈베르트와 비발디-정신병자 지토를 매혹시키는-가 나오고, 주인공 마르크가 가장 좋아하는 프레스토발디가 흐른다. 이 소설의 구성에서 프레스코발디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두 영역을 넘나든>이 음악가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의 비극적 이중성을 상징한다. 마르크의 몸속에 들어가, 마르크의 아내와 같이 자면서 놀랍고도 결정적인 경헙을 할 만큼 완전하게 마르크 노릇을 한 지토는 자기 자신도 프레스코발디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여러 차레 언급되 다른 작곡가가 또 있다. 하지만, 아드리안 레베르퀸이라는 그 음악가는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의 기원』에서 차용한 가공의 인물이다. 작가는 그 음악가를 실제의 인물처럼 소개하고 있다. 즉, 마리는 그의 전기를 읽고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마르크는 아드리안 레베르퀸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 영혼을 악마에게 판, 그 현대판 파우스트의 음악들에서 자기 자신의 파멸을 예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마르크 역시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 영혼을 악마에게 팔았으니 말이다. 우리는 필립 보쌍이 프레스코발디의 음악에 대해, 그 자유와 미묘한 조화가 경이롭다고 말한 것을 벨레토의 소설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그와 아울러 이 소설은 인류에 대한 하나의 경고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인류의 지력이 근원적인 한계에 도달하고 난 뒤, 인간의 존재와 그 본질에 관해 새롭게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벨레토의 문제는 <윤리 위원회>의 문제가 아니지만, 인류의 미래에 대한 벨레토의 우려는 <윤리 위원회>의 우려와 일치한다. 4.르네 벨레토의 주요 작품 소개 (1) 『유령처럼 돌아오다』 가. 출간: 80년, 아셰트 출판사. 90년, 젤뤼 출판사에서 포켓판으로 재출간. 나. 수상: 81년 레테 상 다. 줄거리: 리옹 출신의 마르크(33세)는 리옹 대학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이자벨과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서 살고 있었다. 아내는 사립 학교의 독일어 교사로 있다가 교장과의 불화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어떤 정치적인 모임에 다니고 있었다. 아내가 실직한 뒤로 마르크는 간간이 음악 강의를 나가기도 하고 기타 교습도 했지만, 둘의 생활은 대단히 궁핍하였다. 그들에겐 일곱 살 난 아들 에릭이 있는데, 아이는 리옹에 있는 마르크의 이모 집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곤궁하고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돌연 자살을 택했고, 마르크는 무덤 속과도 같은 바로셀로나의 생활을 청산하고 아들이 있는 리옹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마르크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리옹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내가 떠난 이 세상에서 마르크로 하여금 삶을 부지하게 만드는 유일한 희망은 아들 에릭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이모 할머니 밑에서 자란 에릭은 아주 잘생기고 착하고 속이 깊은 아이다. 리옹에 돌아온 마르크에게는 뜻하지 않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두 살 연하의 안느 마리라는 여자를 17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둘은 그리 가깝지 않은 종남매 간이고 사춘기 적에는 서로 뜨거운 눈길을 주고 받기도 했던 사이다. 안느 마리는 친척들 사이에서 <모자라는 아이>로 호가 났을 만큼 단순하고 어수룩한 여자지만, 출중한 미모를 지녔고, 그 얼굴 정가을 하느라고 일찍부터 바람이 났으며, 급기야는 이탈리아 시칠리 섬 출신의 나이 많고 돈 많은 갱스터와 오를레앙에서 동거 생활을 하고 있다. 안느 마리와 함께 사는 막심 살로몬이라는 남자는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를 거쳐 남미로 이민을 간 다음, 그곳에서 포주, 청부업, 첩보 활동, 마약 거래, 도박 등을 통해 거액을 손에 넣은 뒤, 범죄 세계에서 은퇴하여 프랑스로 돌아왔다가 우연히 안느 마리를 만나 동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안느 마리는 그 갱스터 덕분에 돈에 관한 한 부족함을 모른다. 오를레앙의 은둔 생활에 따분함을 느낄 때마다 그녀는 리옹에 돌아와 며칠씩 보내곤 한다. 안느 마리와의 재회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마르크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다. 마르크는 안느 마리의 제안에 따라 오를레앙에서 여름을 날 작정으로 아들과 함께 떠난다. 그러나 오를레앙 교외의 안느 마리 집에서 평화로운 전원 생활을 즐기리라던 기대는 아들 에릭의 끊이지 않는 두통과 구토 때문에 금방 끝이 나고, 아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마르크는 부랴부랴 리옹으로 돌아와 병원을 찾는다. 에릭의 병은 뇌종양이었는데,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악성이어서 수술을 해 보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만다.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잘생긴 아들의 느닷없는 죽음은 마르크를 극도의 허탈감에 빠뜨리고, 그 부당한 죽음에 대한 분노는 알랭 올름달이라는 남자에게로 집중된다. 그 사내는 마르크가 예전에 살았던 집의 세입자로서 자기들의 물건을 찾으러 온 마르크 부자를 위협하며 내쫓다가 마르크를 넘어뜨리고 에릭의 머리에 상처를 입혔던 사람이다. 아들의 죽음이 그 사내 탓이라고 주장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음에도, 자기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다른 수단을 찾지 못한 마르크는 결국 그 사내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마르크는 무기를 구하기 위해 오를레앙의 막심에게 전화를 한다. 막심이 예전에 갱스터 노릇을 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마르크는 막심의 주선으로 리옹에 있는 막심의 친구 장 날레에게서 권총을 구하여, 알랭 올름달의 집 앞에서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마르크는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고 총을 강물에 버린다. 살인을 면한 것은 다행이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마르크는 이제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된다. 마르크에게 무기를 구해 주었던 장 날레라는 자가 전화를 걸어 간단한 일을 제안한다. 꾸러미 하나를 어떤 사람에게 전해 주기만 하면 거금을 주겠다는 것이 제안의 내용이었다. 마르크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제안에 응했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꾸러미를 전해 주러 간 자리에서, 마르크는 엉뚱하게 마티외라는 사람으로 오인되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어떤 자들의 간계에 의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마르크는 자기를 죽이려는 자를 죽이고 도망을 친다. 같은 시간, 오를레앙의 막심은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혼수 상태에 빠진다. 한 가닥 의식을 가까스로 회복한 막심은 마르크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마르크는 안느 마리에게서 급히 오를레앙의 병원으로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다. 막심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마르크에게 어떤 처녀의 사진 한 장을 건네준다. 그 처녀는 누구인가? 막심은 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그 사진을 마르크에게 건네 준 것일까? 사진 속의 여자를 찾기 위한 마르크의 탐색이 시작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이 여전히 그를 마티외로 알고 뒤를 밟고 있다. 마르크는 리옹에서 니스로, 다시 로마와 시칠리아로 무대를 넓혀 가면서 생사를 건 일대 모험을 펼친다. (2)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가. 출간: 82년, P.O.L.출판사(미셸 드빌 감독에 의해 \'한시라도 지체하면 위험하다\'라는 책이름 으로 영화화). 91년, 젤뤼에서 포켓판으로 재출간 나. 수상: 83년 추리문학 대상 다. 줄거리: 음악 학교를 나온 뒤 일정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기타리스트 A에게 어느 날 기타 교습을 해 달라는 제안이 온다. 기타 교습을 원하는 가정을 방문하던 날, A는 그 집안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감지한다. 주인 남자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수상쩍은 방법으로 거금을 모은 뒤, 리옹에 정착하여 신흥 사업가 행세를 하는 사람인데, 부인과는 오랫 동안 헤어져 있다가 최근에 다시 결합했다. 부인은 미모가 빼어나고 자태가 요염하며, 기타를 배우려는 학생인 열다섯 살짜리 딸 역시 고혹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부부 사이에는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는 듯하고,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부녀 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무관심과 서먹함이 있다. (3) 『지옥』 가. 출간: 86년, P.O.L.출판사. 쇠유 출판사의 <푸앵> 총서에 포함됨. 나. 수상: 86년 페미나 상, 리브르 앵테르 상, 최고 서스펜스 구텐베르그 상 다. 줄거리: 8월의 리옹. 연일 최고 온도의 기록을 깨뜨리며 폭염이 텅 빈 도시를 짓누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이들을 빼고는 모두가 더위를 피해 어딘가로 떠났다. 그 도시의 옹색한 한 아파트에 고독한 독신 남자가 살고 있다. 더위와 불면증과 불규칙한 식사와 우울증 때문에 그는 늘 고열을 느끼며 산다. 미셸 솔레르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한때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적이 있었지만, 바하에 심취하여 『바하의 푸가』라는 책을 쓸 무렵부터는 연주 활동을 일체 중단했고, 지금은 몇몇 신문에 음악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전화기가 두 대 있지만, 그에게 전화를 걸어 줄 사람은 양어머니뿐인데, 그분마저 몇 년전부터 외부 세계에 문을 닫은 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미셸은 삶에 대한 의지와 죽음을 향한 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그는 양어머니 앞으로 보낼 유서를 서랍장에 넣어 두고 있고, 1분 간격으로 다섯 알을 먹으면 영원히 이승을 떠나게 해 줄 <알리밀 1000>이라는 알약을 지니고 있다. \"나는 지쳤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기꺼이 이승을 떠나고 싶어. 아, 주께서 나를 이 육신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실 수 있다면! 그대 지친 눈을 감으라. 감미로운 행복을 느끼며 그대 눈을 감으라...\"고 노래하는 바하의 칸타타 <나는 만족하노라>를 자주 듣는가 하면, <알리밀 1000> 한 알을 네 조각을 내어 먹고 깊은 잠을 자면서 죽음을 연습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느닷없이 전화가 걸려 온다. 그의 아파트 근처에 있는 <에트랑제 호텔>의 투숙객을 찾는 잘못 걸려 온 전화였다. 번호가 비슷한 탓인지 그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미셸은 \"에트랑제 호텔입니까?\"라는 상대방의 물음에 그저 가장 간단하고 가장 수동적인 대답을 하고 싶은 마음에 \"예\"라고 대답한다. 상대가 \"228호의 리젬 씨 부탁합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잠깐만요\"라고 말하고는 다른 방에 있는 전화기로 가서 리젬이라는 사람에게 전달될 메시지를 대신 받는다. 별 생각 없이 한 그 행동이 엄청난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를 몰고 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 일이 있기 열흘 전에 미셸은 미국의 헐리우드으로부터 우편 엽서를 한 통받았다. 라이너 폰 고타르트라는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