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로고 열린책들 슬로건
홈 로그인 회원가입 사이트맵 영문 문의게시판
 
 
 
 
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노르만 올러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석영중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23
열린책들 도서목록
 
Home > 열린책들 > 새로 나온 책
새로나온책  
 
요가(Yoga)
에마뉘엘 카레르(Emmanuel Carrère)
임호경
열린책들
2023년 10월 15일
연장정 / 456 면
978-89-329-2350-5 03860
프랑스 소설 / 장편소설
16,800
 
 
 


프랑스 최고 작가 에마뉘엘 카레르
그 치열하고도 투명한 내면 탐구의 기록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작가이자 소설 『왕국』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가 에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요가』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출간 즉시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23개국에 출간 예정인 이 소설에서, 에마뉘엘 카레르는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 나간다. 『왕국』으로 문학적 성공과 일상의 행복을 동시에 누리고 있던 카레르는 <요가에 대한 기분 좋으면서도 세련된 책>을 쓰기 위해 프랑스 시골로 비파사나 명상 수련을 떠난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잇단 악재들로 인해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그와 함께 책 또한 처음에는 상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며 카레르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가장 내밀한 이야기에서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로
주어진 삶을 이끌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에 대하여

『요가』는 인생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카레르는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 사건으로 지인을 잃고, 불륜 관계에 있던 연인이 떠나며, 자신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두 달 가까이 몸을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욕조 배수구가 막혔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 때만 옷을 벗었다. 후줄근한 코르덴 줄무늬 바지,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낡은 스웨터, 마치 내가 곧 정신 병원에 갇힐 것을 예기라도 한 듯 끈을 빼버린 운동화 등 그야말로 우울증 환자의 유니폼 같은 것들이었다. (……) 어느 날에는 마치 제단에 올리듯 선반 위에 올려놓았던 조그만 쌍둥이상을 몇 센티미터 움직이려 하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쌍둥이상은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나는 바닥에, 내 두 발 사이에 흩어진 그 조각들을, 내 사랑의 은밀한 상징이었던 그 테라 코타상 두 조각을 내려다보며 적어도 한 시간은 서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 이보다 더 웅변적인 표현은 없어, 모든 게 부서져 버렸어, 모든 게 끝났어…….> 
― 본문 231~232면

한 개인의 이야기에 불과한 『요가』가 독자들에게 감동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유지하고 보수해 나가기 위해 애쓰고, 그것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요가』를 읽으며 카레르라는 한 개인의 내면을 낱낱이 훑어보다가, 이것이 실은 나 자신의 이야기,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난무하는 시대 속
전례 없는 구성 방식과 자기 성찰로 우뚝 선 책

『요가』를 특별한 소설로 만드는 또 다른 점은 작가 자신의 정신과 입원 전력 같은 가장 내밀한 이야기까지 파고드는 가차 없는 철저함과, 언뜻 보면 주제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질적인 텍스트들로 이야기를 꾸려 나가는 구성 방식이다. 비파나사 수련원에서의 명상에서부터 시작해 중구난방처럼 보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거쳐 난민들이 모여 있는 레로스섬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까지, 『요가』는 작가 자신에게 발생한, 일견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 수많은 일화들을 단편적으로 나열한다. 그러나 카레르는 이 무관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을 마술적인 글 솜씨로 유려하게 엮어 그 속에서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방은 너무나, 너무나 많이 작아져서 조그만 상자가 되는데, 이 상자는 또 줄어들어 나는 천장에 달라붙어 울기 시작한다. 나는 울고 또 울면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나를 죽이는 것은 직업상 그들이 할 일은 아님을 잘 알지만 그래도 제발 나를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 내가 이렇게 신음하며 내 의식을 꺼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들은 신속히 소원을 들어준다. 그들이 주사 한방을 놓자 퓨즈가 퍽 나가 버리면서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 본문 258면

카레르라는 한 개인을 독자들에게 낱낱이 까발리며, 마치 독자가 그를 자기 자신처럼, 혹은 친밀한 친구처럼 속속들이 아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 낸다. 또한 이 독창적인 구성 방식은 수많은 픽션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요가』를 진정한 자기 성찰이 돋보이는 책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한다.

진정한 <요가>란 무엇인가
삶을 달관하고 다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카레르는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요가에 대한 정의를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카레르에게 있어서 요가는 자신의 삶을 다스리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런 카레르에게 요가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의 실제의 모습을 검토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 가운데서 거슬리는 것들과 마주칠 때 그것들을 피하는 대신에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고, <마음의 요동을 멈추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요가에 대한 정의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다 결국 소설의 말미에서 카레르가 다다르는 마지막 열세 번째 정의는 아주 속되고 단순하다. 요가는 바로 <오줌 눌 때 오줌 누고, 똥 쌀 때 똥 싸는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머물러야 할 이유도 떠나야 할 이유도 찾지 못하고 레로스에서 뭉그적대고 있는 첫가을의 오늘, 나의 마음은 명상은 오줌 눌 때 오줌 누고, 똥 쌀 때 똥 사는 것이다, 이 정의로 쏠린다. 이것은 지금 내가 별다른 논평 없이 하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하므로, 이따금 나는 마침내 정말로 명상하고 있다는 재미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난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고, 그저 친근한 개들에게 녀석들의 막대기를, 허영심의 막대기, 자신에 대한 증오의 막대기, 너무 늦었다는 생각과 생각에 동반되는 쓰디쓴 맛의 막대기를 던지고 있을 뿐인데, 너무나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 나는 거의 행복감마저 느낀다.>
― 본문 402~403면

삶에 대한 이러한 체념 혹은 달관 끝에 카레르는 다시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찾는다. 자판을 외우고 타이핑을 연습한다는 핑계로 이 소설을 집필하고, <누구도 내 사랑 안에서 안식하지 못했고, 나 역시 누구의 사랑 안에서도 안식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카레르는 이렇듯 <삶을 진짜배기 지옥으로 만드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비루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또 그것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열린책들
열린책들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