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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유강은
열린책들
2021년 11월 05일
연장정 / 448 면
978-89-329-2148-8 93910
역사 > 중동사
25,000
 
 
 

단단한 학문적 근거, 생생한 개인적 경험…… 매혹적이고 독창적이다.
— 놈 촘스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기원과 본질

<이스라엘, 가자지구 130곳 공습>, <핏빛 팔레스타인… 하마스 로켓포 쏘자 전투기로 보복>…….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 국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광경은 너무나 익숙하다. 가장 최근인 2021년 5월 열흘간 벌어졌던 유혈 충돌에서도 팔레스타인인이 300명 가까이, 이스라엘인이 12명 사망했다. 미국의 국제관계 평론지 『포린 어페어』는 이번 분쟁을 <더 폭력적인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팔레스타인은 어쩌다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을까? 왜 이 전쟁은 한 세기 넘도록 끝나지 않을까?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역사학자 라시드 할리디의 신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기원과 성격을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로 규정한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학살하고 미국을 세운 것처럼, 영국과 미국 등 열강을 등에 업은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몰아낸 뒤 정착민으로서 밀고 들어왔다는 것. 오늘날 두 나라의 빈번한 충돌 역시 100년간 이어져 온 식민지 전쟁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2020년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팔레스타인 민중의 관점에서 분쟁 전반을 기술한 보기 드문 수작>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놈 촘스키, 아비 슐라임 등 세계적인 석학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저자 본인이 팔레스타인에 수백 년간 뿌리를 둔 명문 가문 할리디가(家) 출신으로, 역사적 현장에 있던 일가친척의 발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팔-이 분쟁사 연구에 깊이와 생생함을 더했다.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오늘날 가자지구 공격까지 여섯 번의 결정적인 시기를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정착민 식민주의 연구를 위한 탁월한 틀>을 제공한다.


팔레스타인 명문 집안 연구자, 한국과의 인연

라시드 할리디는 국내에 거의 처음 소개되는 학자이지만, 이미 세계적인 중동 문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CNN, BBC 등 언론에 종종 인터뷰이로 등장하고, 『팔레스타인의 정체성Palestinian Identity』 등 그의 주요 저술들은 20세기 중동 사회의 민족주의‧식민주의 연구자들의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력이 놀라운데, 저자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정치인, 판사, 외교관, 언론인을 배출한 팔레스타인의 명문 가문 할리디가 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현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고조부 유수프 디야 알할리디는 1870~1906년 사이 세 차례나 예루살렘 시장을 지냈고(예루살렘, 몰타, 이스탄불, 빈 등에서 교육받았다), 큰아버지 후세인 알할리디 역시 예루살렘 시장(1934~1937)을 역임했고, 영제국의 탄압을 받아 외딴 섬 세이셸 제도에서 유형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서문에는 저자가 초기 시온주의 운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할리디 도서관을 애용했다고 밝히는데, 이 도서관은 1899년 저자의 할아버지가 증조 할머니의 유산으로 예루살렘에 세운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큰 사설 도서관이다(팔레스타인 문학·역사에 관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한편 할리디의 아버지 이스마일 라기브 알할리디는 19년간 유엔에서 일했고(유엔 정치안보이사회국 소속), 아랍-이스라엘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사무총장을 보좌하며 안보리 회의의 실무를 담당했다(덕분에 저자도 1967년 전쟁 당시 휴전을 교섭하던 유엔 회의장에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할리디 본인도 1982년 이스라엘 공군의 베이루트 공습 당시 가족들과 함께(아내와 두 딸, 어머니, 남동생) 현장에 있었고, 서베이루트 포격과 포위 공격이 진행된 10주간 아이들을 돌보면서 <물과 전기, 신선 식품 부족이 부족한 상황과 쓰레기 태우는 냄새를 견뎌 냈다>. 1992년에는 오슬로 회담의 일환으로 진행된 워싱턴 교섭에 팔레스타인 대표단 고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이 눈에 띄는데, 할리디의 아버지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수석 총무(1962~1965)를 맡으면서 한국에 근무할 당시, 할리디는 3년간 이태원의 서울미국인고등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어판 서문에는 그 시절에 일본 식민 지배에 맞선 한국인의 투쟁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착민 식민주의

흔히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같은 땅에 대해 각자 권리가 있는 두 민족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묘사된다>. 일종의 원조 논쟁이다. 수천 년 전의 선조의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측(유대인)과 그 땅을 수백 년간 점유해 온 측(아랍인), 모두에게 일정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과거에 선조들이 어떤 지역을 점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후손들이 그 지역의 실점유자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구려가 한때 만주 지역을 지배했다고 지금에 와서 중국에 그 땅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할리디는 이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진실을 똑바로 볼 것을 주문한다. 시온주의가 내건 종교적 명분이나 역사적 근거는 착시에 불과할 뿐, 이 전쟁의 본질은 언제까지나 <식민주의>였음을 지적한다. 다만 팔레스타인의 경우엔 식민 본국(영국인)이 아닌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정착민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특별할 뿐이다.
또한 팔-이 분쟁은 최악의 경우에는 <유대인이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고국에 대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하자 아랍인과 무슬림이 광신적이고 완강하게 증오한 결과로 묘사된다.>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 이산을 겪고 핍박당하는 민족이라는 시온주의의 서사는 <성경을 끼고 사는 영국과 미국의 개신교도들에게>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또한 미국으로 몰려든 유대인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1880~1920년 사이에 미국의 유대인 인구는 25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현대의 정치적 시온주의는 미국에서, 유대인 공동체 내부와 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깊이 뿌리를 내렸다.>
결국 영국은 밸푸어 선언(1917)으로 유대 국가를 꿈꾸던 시온주의 운동의 손을 들어 주었다. 팔레스타인에 사는 94퍼센트의 아랍 주민 대신, 6퍼센트의 유대인에게 땅의 권리를 넘겨준 셈이다. 이후 유대인이 새로운 정착민으로 순차적으로 밀려들어오고, 쫓겨난 원주민들은 팔레스타인 외곽과 주변 아랍 국가의 난민촌에 둥지를 틀고,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투쟁에 돌입한다. 그렇게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정착민 식민주의가 당대의 강대국(영국과 미국)의 지원 아래 원주민을 몰아내려고 선전포고를 하고, 100년간 전쟁을 이어온 것이 바로 지금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평화를 바라는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퇴짜를 맞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처럼 그동안 시온주의가 <관념과 재현, 언어와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국제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시온주의와 식민주의 기획

할리디는 이 책에 시온주의의 식민주의 기획 가운데 몇 가지 특징을 짚어낸다.
첫째, 원주민을 안심시키기. 시온주의 창시자 헤르츨은 1899년 예루살렘 유력 정치인 유수프 디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오더라도 걱정할 게 없다고 교묘한 주장을 편다. 오히려 유대인의 이민을 대거 허용하고, <우리(유대인)의 안녕과 부를 위해 노력하면 그들(팔레스타인 주민)의 안녕과 재산도 늘어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내세워 온 빤한 논리였다. 헤르츨은 <다수의 유대인이 지적 능력과 경제적 재능, 사업 수단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오도록 이민을 허용하면, 이 땅 전체의 안녕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후 역사가 증명하듯, 시온주의의 목적은 아랍인(원주민)과 유대인(정착민)의 공존이 아니라, 오로지 유대인이 독점하는 <유대 국가>의 건설에 있었다.
둘째, 원주민의 정체성과 문화 부정하기. 1969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고,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발언으로 큰 논란을 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비가시화해 온 역사는 뿌리가 깊다. 할리디에 따르면, 시온주의 도래 이전에 이미 <팔레스타인은 황량하고 아무도 살지 않으며 후진적인 땅이었음을 입증하는 데 골몰하는> 문헌들이 다수 등장했다. <유목 생활을 하는 소수의 베두인족>이 배회하고, 그들은 <뚜렷한 정체성이 전혀 없고 땅에 대한 애착심도 없었다>는 식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였다. <사람 없는 땅을 땅 없는 사람들에게 주자.> 팔레스타인은 그곳에 정착하러 온 이들(유대인)에게 <주인 없는 땅>이었다.
셋째, 원주민의 경제력과 인구를 희생시키는 급진적인 사회공학.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토착 사회의 해체는 유대인 정착민의 정치적 자율성과 경제력을 높이는 반면, 원주민의 권리는 제한하고 경제적 차별을 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영국 위임통치 당국은 유대인 정착민에게 국가에 준하는 자치 구조를 허용했고, 경제 부문에서도 아랍 노동자를 배제시키고 해외로부터 막대한 양의 자본을 유대인에게만 몰아주었다(1922년부터 1947년까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경제는 매년 13.2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 비율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차별과 탄압으로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수는 줄고(1936~1939년 아랍 대반란으로 팔레스타인 성인 남성의 10퍼센트가 죽거나 다치고 추방당했다), 정착민 유대인의 인구는 대폭 늘었다. 특히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온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인구 비율은 1932년에 18퍼센트에서 1939년에 31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그리하여 1948년이 되면,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 필요한 인구학적 임계점과 군 병력이 마련되었다. <마침내 시온주의 민병대에 이어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아랍 인구의 절반 이상을 쫓아냄으로써 시온주의의 군사적・정치적 승리가 완성되었다.> 넷째, 무자비한 폭력과 응징. 시온주의 운동과 이스라엘 국가 편에는 언제나 거대한 군대가 있었다. 1939년 이전에는 영국군, 1947~1948년에는 미국과 소련의 지원, 1950~1960년대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있었으며,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는 미국의 무제한적인 지원 외에도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인의 작은 소요나 폭력(시위, 로켓포, 테러)에도, 무자비한 폭력으로 응징했다. 비례 원칙을 넘어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민간인 거주지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이른바 <다히야 원칙>(이스라엘 공군이 약 907킬로그램 폭탄 등 살상 무기로 파괴한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이름에서 따옴)이다. 2008년 이스라엘의 북부 사령관 가디 에이젠코트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하는 모든 마을에서…… 불균형적인 무력을 가해서 막대한 피해와 파괴를 야기할 것이다. 이건…… 정해진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평화는 가능할까?

할리디에 따르면, 정착민 식민주의와 원주민의 대결은 결국 세 가지 경로를 걷는다. 1) 아메리카 인디언과 오스트랄라시아 원주민처럼 완전히 밀려나고 삭제된다. 2) 알제리처럼 식민 지배(프랑스)를 깨뜨리고 독립한다. 3)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소수 정착민과 아슬아슬하게 공존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이 중 어느 길도 쉽지 않다. 만약 <18세기나 19세기였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이 소수였거나 오스트랄라시아와 북아메리카 토착민처럼 완전히 몰살되었다면> 시온주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는 게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등장한 시온주의는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표현대로 <너무 늦게 도래>했다. 또한 오늘날 인구 규모 면에서 이스라엘인의 수와,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까지 모두 합친 숫자가 엇비슷하다. 그 출발이야 어찌됐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100년간 계속된 전쟁이 그 증거다.
이제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할지 공구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스라엘이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에 빼앗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 <국외에서 사는 나머지 절반의 팔레스타인인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것>,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적인 두-민족국가를 창설하는 것> 등(또는 이 선택지들의 조합이나 변형)도 가능하다. 물론 어느 것도 쉽지 않고, 특히 이스라엘이 동의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이 싸움을 멈출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자성도 요구된다. 지난 시기 동안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당대의 지정학적 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내부 분열과 무모한 저항에 몰두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서사에 맞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지금의 호기를 놓치기 말고, 주변 아랍인과 세계 여론, 심지어 이스라엘 여론에 호소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을 주문한다. 여전히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이스라엘에도 불행한 일이다. 저자는 <상호 인정>과 평등, 정의를 원칙으로 삼아 국제 사회를 팔레스타인의 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요청한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가운데서도 오직 이런 정당성을 손에 넣을 때에만 팔레스타인이 세계인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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