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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책  
 
대서울의 길
김시덕
열린책들
2021년 08월 20일
연장정 / 512 면
978-89-329-2137-2 03900
역사/인문
20,000
 
 
 

 대서울의 길을 걷다

도시 문헌학이라는 고유한 방법론으로 도시 답사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는 <서울 선언> 시리즈가 시즌 3로 돌아왔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 김시덕 교수의 신간 『대서울의 길』은 제목 그대로 <>이 주인공이다. 교외선, 수려선, 48번 국도 등 서울 내외곽에서 번성했던 철길과 도로를 따라 걸으며 시민의 잊힌 역사와 대서울의 구조를 읽어 낸다.
  <서울 선언> 애독자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이번 답사에도 <전근대의 왕과 양반과 전쟁 영웅들>의 기념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철길 변 마을의 옛 지명과 비석, 국도의 표지석과 폐역의 플랫폼 등 대서울 주변의 <>과 관련된 <도시 화석>이 지면을 채운다. 특히 이번 책은 전작들의 답사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저자가 새롭게 정의하는 대서울의 경계 끝(강원도의 춘천원주, 충청남도의 천안아산)으로 나아간다. 길과 운명을 함께해 온 대서울의 과거와, 길을 따라 확장해 온 대서울의 현재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대서울의 길을 따라 걸으며 저자는 새로운 <갈등 도시>의 현장을 발견한다. 경춘선 폐선 구간의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 GTX 신설 철도 노선을 유치하려는 지역 간의 경쟁. 그리고 길이 끊기거나 새로운 길이 놓이면서 사라져 간 마을과 <제자리 실향민>의 아픔을 확인한다. 대서울의 경계 끝에서 이 책은 묻고 있다. 이 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이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으로 보는 대서울

 <대서울Greater Seoul>이라고 하면 흔히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을 생각하지만, 이 개념의 핵심은 선()이다. <길을 따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생활권, 곧 서울 사대문, 영등포, 강남을 중심으로 피자 조각처럼 방사선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모습이 대서울이다.>
이 책은 고대 페르시아의 사막의 지하 용수 시스템인 <카나트>로 대서울의 확장을 설명한다. 카나트 시스템이 높은 곳의 계곡물을 낮은 곳의 사막 지대로 흘려보내듯, 지난 100여 년간 수도 서울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은 길(철도와 도로)을 따라 주변 농업 지역으로 뻗어 나갔고, 도시화가 촉진되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서울과 가까운 지역은 오아시스 주변처럼 뚜렷한 경계 없이 서울과 결합되어 갔고(연담화 현상), 외곽으로 멀어져 갈수록 역과 인터체인지, 공항이라는 거점 주변으로 크고 작은 도시들이 나타난다.

다시 대서울을 피자에 비유해 보자. 커팅기가 지나간 자국이 바로 대서울의 길이고,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자신의 거주지와 직장·학교를 오간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정체성은 소속된 행정구역 못지않게 <어느 길>에서 생활하는지가 중요하다. 같은 강원도민이라도 춘천에서 통근하는 사람과 원주에서 통학하는 사람 사이에서보다, 오히려 같은 길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동질감을 느끼기 쉬운 이유이다. 
이제 저자는 일터로, 학교로 길을 따라 움직이는 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대서울을 실감한다. <아침에 동서울, 잠실, 강남, 양재, 사당과 이들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 저녁에 이들 지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수도권 전철 안의 학생들, 늦은 밤 사당역 주변 버스 정류장에 길게 줄을 선 직장인들을 볼 때마다, 길을 통해 방사선으로 이어져 있는 대서울의 구조를 확인합니다.> 대서울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태극기와 망향비

이 책은 답사기를 표방하지만, 대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흥시 과림동의 모갈 마을(LH 투기 사건으로 유명하다), 구리시의 담터 마을, 헌릉로 희망대 공원 주변 신흥 2구역, 김포선의 오쇠동 등 도시 개발로 충돌을 빚고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 기록으로 남긴다. <갈등 도시> 대서울의 현재 모습이고, 결론이 나지 않은 우리의 현재사이다.
저자는 현대 한국의 도시 개발의 역사가 세입자·임차인들에게 너무 불공정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비판한다. 인프라조차 없던 땅을 세입자·임차인들이 기껏 <살 만한 곳>으로 만들면 갑자기 땅주인이 튀어나와 이들을 다시 도시 바깥으로 몰아내는 과정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 특이한 점은 이와 같은 불공정한 법률 구조 속에서, 태극기가 재개발에 저항하는 상징물로 단골처럼 등장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유하지 않은 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집의 문이나 창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시흥시 북부의 한 공업 지역에도 태극기가 한가득 붙어 있는 컨테이너가 놓여 있고, 태극기 아래에는 <도지사님 살려 주세요! 시장님 도와주세요! 가족 520명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펄럭이는 태극기에는 소위 <민주주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이 <시민의 재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비난과, 자신들의 권리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담겨 있다.
한편 <제자리 실향민>(분단에 의한 실향민이 아니라, 신도시 개발처럼 국가의 개발 정책에 의해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존재는 대서울의 성장과 더불어 <철거와 이주>가 반복되어 온 대서울의 아픈 역사를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이를테면 상계동과 평택시가 그렇다. 1986년 상계동 지역의 빈민들은 포천군으로 쫓겨난 뒤 오늘날 천보 마을에 정착했고, 정착 직후 20년간은 옛 고향을 잊지 못해 <상계 마을>로 불렀다. 천보 마을의 담벼락에는 노원구 상계동으로 보이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살던 곳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이주한 마을에는 종종 옛 마을의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평택시 율곡 마을에서도 같은 사례를 볼 수 있다).
또한 평택시에는 캠프 험프리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난 분들이 정착한 이주 단지가 네 곳 있는데, 두릉 지구도 그중 한 곳이다. 주민들은 새로운 마을에 공적비를 세워 국가의 뜻에 따라 이주한 사연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그 이름도 정다운 우리 고향 황구지리, 금각 2리 마을은 2005년 국방 사업에 의해 수용됨으로써 30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채 안타깝게 역사의 뒤안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자리 실향민들은 망향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여러 가지 상징물을 남겨 왔고, 대서울 구석구석에서는 망향의 돌들이 이들을 대신해서 슬픈 사연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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