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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책  
 
서울 선언
김시덕
열린책들
2018년 06월 10일
연장정 / 416 면
978-89-329-1916-4
18,000
 
 
 

문헌학자답게 서울 걷기
 
규장각한국학연구소 김시덕(金時徳) 교수의 새 책 『서울 선언』은 좀 의외의 주제를 다룬다.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종의 답사기다. 고문헌학자가 왜 서울 답사에 나섰을까? 그가 걷고 본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문헌학자가 서울 답사기를 썼다고 하면 아마도 <문화유산 답사>를 떠올릴 것이다. 궁궐과 박물관, 역사 유적을 돌아보겠거니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이 책에 그런 장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찬란한 문화유산이나, 아픈 근대의 흔적 같은 이야기는 없다. 물론 이 책도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시점은 대체로 현재에 가깝다. 
저자는 주로 <여기도 서울인가?> 싶은 장소들을 걷는다. 그 장소들은 그가 40여 년간 살고 생활했던 곳들이다. 특별할 것 없고 역사가 없어 보이는 곳들을 걸으며 조금은 다른 서울의 역사를 읽어 낸다. 그는 그 장소들을 <무수히 많은 책이 꽃힌 도서관>이라고 칭한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어쩌면 진짜 서울의 역사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여기도 서울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현대 서울이다. 얼핏 봐선 볼품없는 곳들이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와 골목, 공단과 종교 시설, 주택가와 빈민가, 유흥가와 집창촌, 서울 안의 농촌 지대, 이런 곳들이 저자의 관심사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곳이 바로 시민의 생활 터전이라는 점이다. 경복궁 근처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도 극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에 관심이 없고, 함부로 없애 버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저자가 보기에 이것은 아마도 그 장소들에서 역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이다. 또한 <시민의 도시>로서 서울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장소들이 서울의 변두리라는 점이다. 이제는 서울의 새로운 중심처럼 느껴지는 강남도 사실은 가장 늦게 서울에 합류한 변두리 중 하나다.  <강남은 서울이 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보는 변두리의 한 특징은 <역동성>이다. 이 장소들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재개발은 그 한 단면일 뿐이다. 한편으로 역동성은 사회 변혁의 측면을 말하기도 한다. 위정자들은 불안 요소들을 서울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노력해 왔다. 빈민과 철거민, 집창촌, 공단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쌓인 불안이 사회 변혁의 불씨가 되어 왔다. 저자는 <현대 한국의 변화는 언제나 땅끝에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파악하려면 서울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도시, 서울
 
그렇다 하더라도, 한양 도성 안의 풍성한 문화유산을 두고 굳이 변두리를 걸어야 할까. 경복궁이나 종묘에 가면 얻을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조선 왕조의 유산은 그 자체로 서울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이 책은 서울에서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것이 단지 그뿐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조선 왕조와 사대부 문화의 계승을 서울의 정체성 확립과 동일시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 관점을 <조선 왕조 중심주의>라 칭하고, 강남 개발  과정에서 파괴된 백제 고분과 왕성들, 은평 한옥 마을 조성 과정에서 파괴된 5,000여 기의 평민 무덤을 예로 든다. 한편으로는 일제 잔재 청산을 이유로 근대 문화 유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행태도 문제 삼는다. 일제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아픈 역사를 감추고 지울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드러내야만 교훈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서울이 <역사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우리는 외국에 비해 문화유산이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침략을 많이 받아서>, <일제의 약탈>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책임이 현대 한국에도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사대문 안 조선 왕조를 복원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같은 일에 매달리는 한편, 사대문 밖 오래된 장소들은 함부로 파헤쳐 재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저자는 서울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할 것을 요청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은 조선 왕조와 사대부의 전통을 잇는 도시가 아니고, <공화국의 수도>이자 <시민의 도시>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뿐 아니라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도 공존하는 도시다. 이 모든 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서울의 진정한 주인, 시민을 존중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서울을 걷는 법
 
저자에게 서울 걷기는 곧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는 방편이다. 그는 <사대문 안이 진짜 서울>이라는 동료 연구자의 말을 인용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애초의 문제의식이다. 한편으로는 학자로서 정체성과도 맥락이 닿는다. 사학계 일부는 그의 학문적 관점을 두고 <친일파>라고 비판한다. 그는 사대문 밖 서울을 <가짜>로 보는 태도가 자신들과 다른 학문 관점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 맞서기 위해 위정자들과 학자들이 가치 없다고 치부하는 사대문 밖 서울을 걸었다. 
즉, 이 책의 서울 걷기는 저자의 삶의 이력을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하지만, 누구나 나름의 삶이 깃든 장소가 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걷기를 권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적 맥락을 읽기 쉽도록 배려한 궁궐과 유적지에 비해, 우리가 사는 주변부를 걸음으로써 뭔가를 얻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노하우는 같은 장소를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걷는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서울의 주인이고, 변화야말로 서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관찰해야만 의미를 짚을 수 있다. 또 하나의 노하우는 <여럿이 걷기>다. 무엇이든 혼자서는 알기 어렵다. 가능하면 동료와 함께 걷는 것이 좋다. 저자 역시 책의 곳곳에서 함께 걷던 동료로부터 중요한 통찰을 얻는다. 한편으로 선행 답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가령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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