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백과사전을 다시 쓰는 살아 있는 도서관, 움베르토 에코
우리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움베르토 에코는 24세 때부터 저술 작업을 시작해 77세인 현재까지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열정적인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가량 판매되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와 미국의 브라운 대학교를 비롯해 전 세계 30여 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교와 캐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는 등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학자이다.

움베르토 에코와 열린책들이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86년에 『장미의 이름』을 번역 출간하면서부터이다. 당시만 해도 에코라는 이름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터라 출간 직후에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현재까지 217쇄를 찍은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 1위를 지킬 만큼 명저가 되었다. 이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등을 꾸준히 출간하면서 소설가로서 에코의 진면모를 알렸고, 전 세계적으로 기호학에 대한 관심이 불었을 때에는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를 국내에 소개했다. 이와 함께 재치와 풍자, 패러디를 즐겨하는 에코식 글쓰기가 회자되면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같은 문화 비평 에세이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활동 분야를 살펴보면, 그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를 찾아낼 수 없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사람. 저명한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그의 지적 촉수가 닿지 않는 분야는 없다. 이 지독한 <공부 벌레>는 <언어의 천재>이기도 하다. 모국어인 이탈리어는 물론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한다.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볼로냐 대학 교수이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등 현재 열린책들에서 나온 에코 라이브러리 시리즈 중 여덟번째로 문학 비평서 『해석의 한계』가 출간되었다.

문학에서의 <해석>이라는 문제를 기호학, 철학적으로 인식하고 그 한계와 조건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집필된 『해석의 한계』는 제1장 「<독자의 의도>, 수용기호학에 관하여」, 제2장 「신비주의적 기호현상의 양상」, 제3장 「해석의 작업」, 제4장 「해석의 조건」 등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양사를 이끌어 온 문헌학 발전의 역학 관계를 해석의 관점에서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금세기 최고의 기호학자이며, 또한 역사학자, 철학자, 미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 교수는 이 책에서 <공인된 표준형>이라는 그림자에 가려 또 다른 본질을 외면하던 서양 비평 이론의 근원을 기호학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석과 비평이 나아갈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고대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기억술이나 연금술의 자료를 통해 찾아볼 수 있는 신비주의적 사고에 대해 에코는 <중세에는 다소 비밀리에 발전하여 더 폭넓은 르네상스와 바로크적 신비주의의 흐름으로 흡수되지만, 19세기의 신비주의라고 일컫는 낭만주의 미학과 현대의 여러 비평 이론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 갈릴레이의 물리 역학의 시대를 견디어 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본래의 의미>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서 퍼스와 데리다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해석의 다소 난해한 측면들은 해체주의의 비평 방식을 상기시킨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에코는 해석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제기되는 문제들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논점의 대상을 해석의 경제성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색다른 제안을 한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의 작가로서 해석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처한다. <자신도 모르게> 불러일으킨 의미작용에 대해 인정하기도 하나 과잉적인 해석과 불필요한 동요에는 냉철하게 대처해 나가며 파라노이아적 해석의 비경제성을 경험론 작가의 입장과 기호학자의 입장에서 폭로한다.

<근본적인 해석 불가능성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해석 대상이 원본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문제와 관련된다고 생각한 에코는 『콘스탄티누스의 헌법』, 『헤르메스 문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부 증서』, 『디오니소스 문서』 등이 위조로 인지되지 못했던 이유를 역사와 기호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한 편의 소설처럼 읽히는 이 책은 엄연한 이론서이다. 『해석의 한계』가 불러일으키는 지적 쾌감과 끈질긴 긴장감은 이 책을 더욱 소설처럼 느끼게 한다. 어쩌면 에코는 <해석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그의 이야기꾼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해석의 한계>를 책임감있게 보여 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가 지적 충격을 주었다면 『해석의 한계』는 지적 충격의 근원으로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이렇게 에코는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상상의 무한함에도 객관적 설득력과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또 다른 해석의 길을 열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