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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국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이 김상훈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20편이 넘는 소설로 영국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언 뱅크스는 1993년에는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로 선정되었고, 1996년의 베스트셀러 『크로 로드The Crow Road』가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SF계에서는 이미 스페이스 오페라 『컬처Culture』 시리즈의 작가로 컬트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거물 작가 이언 뱅크스가 이제야 우리나라에 소개된 데에는 약간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언 뱅크스는 폭넓은 작품 세계 안에서 일종의 백과사전적인 다양함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가들과 구분된다. 즉, 『플레버스를 생각하며Consider Phlebas』 이래 그가 발표한 비(非)SF 장편들을 훑어보면 로큰롤 소설(『에스페데어 스트리트Espedair Street』), 스릴러(『육욕의 꿈Canal Dreams』), 본격 미스터리(『공모Complicity』), 풍자 소설 (『휘트Whit』) 등 다양한 장르를 의식적으로 망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아울러 작품성과 장르적인 쾌락 사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뱅크스가 그의 서른 살 생일에 맞추어 데뷔작으로 선보인 『말벌 공장』은 <영문학사에 남는 걸작>이라는 찬사와 <쓰레기>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으며 문단 내외에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은, 성적(性的)으로 불구라고 생각하는 열여섯 살 소년이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섬 안에서 자신이 만든 잔혹한 신전인 <말벌 공장>을 통해 그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상황에서도 아이러니한 유머가 돋보이는 대화체, 모든 금기를 깨는 잔혹하며 가차 없는 묘사, 상징과 비의(秘儀)로 가득 찬 아름다운 필치로 영국 문단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꾼 이언 뱅크스의 『말벌 공장』은 출간 직후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적잖은 수의 평론가들에 의해 『호밀밭의 파수꾼』에 필적하는 걸작이라는 평을 들으며 저명한 부커상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다.
이언 뱅크스는 자신이 이른바 주류 문학이라고 간주하는 작품에는 Iain Banks라는 이름을, 『플레버스를 생각하며』처럼 순수한 SF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미들 이니셜인 을 넣은 Iain M. Banks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명의로 출간된 『말벌 공장』을 살펴본다면, 내용면에서는 사이코 스릴러 또는 공포 소설에 가깝겠지만, 공포의 씨앗을 제공하는 것이 모던 호러 특유의 <외부의 공포>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있다는 점에서 장르의 문법에서 일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영국 작가 특유의 점액질적이며 시니컬한 내면 묘사는 모놀로그에 가까운 이 소설을 독특한 문학적 풍취를 지닌 일인칭 성장 소설로 변태(變態)시키고 있다. 이 소설 내부에서 집요하게 반복되는 동물들에 대한 학대 행위와 다양한 망상들은 성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강박 증세에 시달리는 주인공 프랭크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이언 뱅크스는 이 소설로 유아 살해, 동물에 대한 고문 등의 충격적인 소재를 유창하면서도 난해한 산문을 통해 극명하게 묘사함으로써 평론계에서 격렬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한 찬반양론을 일으켰지만, 영어권 문단을 통틀어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빼어난 문장력은 인정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이해력, 주인공의 일탈 행위들 사이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시적인 상징들, 그 어떤 세부도 놓치지 않는 치밀하고 명석한 묘사력에는 누구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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